봄은 기다리는 계절이 아니다.
봄은 일어서는 계절이다.
그래서 입춘은 ‘들 입(入)’이 아니라 ‘설 립(立)’의 시간이다.
땅 밑 깊숙이 얼어붙은 얼음을 녹이며 기어이 일어서는 순간, 입춘은 1년 가운데 가장 뜨거운 절기가 된다. 준비를 마친 이들이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품었던 기운을 세상으로 향해 열어젖히는 날. 그래서 입춘은 곧 결단의 시간이다.
지난 1월 24일, 북콘서트를 마치며 계룡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변화의 갈림길에 선 계룡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책임에 대한 응답이었다. 정치·사회·기술이 동시에 급변하는 시대, 머뭇거림은 곧 퇴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이제 계룡은 일어서야 할 시간이다.
분배의 정의를 넘어, 관계의 정의로
계룡시노인회 외벽에는 “정의로운 노인, 밝아지는 사회”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그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무엇이 정의로운가.
정의는 흔히 ‘공정’이라는 말로 환원된다. 누가 더 많이 가질 자격이 있는가, 어떤 기준이 더 합리적인가를 따지는 방식이다. 이는 자원과 기회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초점을 둔 ‘분배적 정의’다. 양적 성장을 거듭하던 시대에는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이바지하고 기여도에 따라 분배받을 것이라는 믿음과 성장의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성장이 멈춰선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의 몫을 줄이지 않고서는 나의 몫을 늘릴 수 없다는 불안이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세대 갈등과 성별 갈등, 지역 갈등 역시 이 같은 제로섬 인식 위에서 증폭되고 있다. 능력만을 기준으로 한 공정은 더는 정의로 작동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등과 불신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배의 정치를 넘어서는 질문이다. 지방분권 시대의 자치 정치는 재화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고 연결할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나는 이를 ‘관계적 정의’라 부른다.
신뢰는 선언이 아니라, 돌봄의 결과다
신뢰와 화합은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적 정의가 일상에서 작동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계룡 곳곳에 쌓인 불신과 갈등을 누가, 어떻게 신뢰로 전환할 것인가.
나는 그 해법으로 ‘정치적 돌봄’을 제시한다. 정치적 돌봄은 특별한 이념이 아니다. 관심과 배려를 행정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약속이다. 금암동 상인회장과 체육회장을 거치며 시장과 운동장, 삶의 현장에서 행정의 실행력을 검증받아 왔다. 돌봄의 정치는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축적된 신뢰의 기록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된 존재다. 그렇기에 돌봄은 개인의 선의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제도의 문제다. 정치적 돌봄이 쌓아 올린 신뢰는 공동체의 자산이 되고, 계룡을 더군다나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역 공동체로 만드는 토대가 될 것이다.
정치적 돌봄이 만드는 계룡의 미래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적 돌봄 정책은 정치적 돌봄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혼자 살아가는 노인에게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고,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에게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서로에 관한 관심과 신뢰를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지금 시대는 ‘초격차’와 ‘초변화’가 일상이 된 시대다. 여기에 지방소멸, 기후 위기, 충남과 대전의 통합이라는 거대한 구조 변화까지 겹쳐 있다. 이러한 위기를 회피하는 도시는 도태된다. 변화에 대응하고, 외부의 변화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나는 돌봄의 정치를 행정의 기준으로 분명히 세워 안으로는 내치를 단단히 하고, 밖으로는 초변화 시대에 걸맞은 스마트 AI 계룡의 미래를 열고자 한다. 판단은 머뭇거리지 않되 갈등을 피하지 않으며, 그 이유를 소상히 설명하고 조정하는 행정을 실현하겠다.
누가 더 많이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따지는 정치에서 벗어나, 어떻게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정치.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것, 그것이 내가 그리고 있는 계룡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