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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뫼신문 20면, 지령 800호 : 인물탐방] 계룡에 귀촌한 한희선 교수

“돌봄은 사적 의무가 아닌, 사회를 지탱하는 공적 노동입니다”

놀뫼신문 | 기사입력 2026/02/28 [15:38]

[놀뫼신문 20면, 지령 800호 : 인물탐방] 계룡에 귀촌한 한희선 교수

“돌봄은 사적 의무가 아닌, 사회를 지탱하는 공적 노동입니다”

놀뫼신문 | 입력 : 2026/02/28 [15:38]

[놀뫼신문 20면, 지령 800호 : 인물탐방] 계룡에 귀촌한 한희선 교수

“돌봄은 사적 의무가 아닌, 사회를 지탱하는 공적 노동입니다”

 

계룡시는 예로부터 천하의 길지라 불려왔다. 이곳에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김국광(1415~1480)의 재실 모원재가 자리하고 있고, 그의 5대손 사계 김장생의 사계고택’, 그리고 김장생의 부인 순천 김씨의 재실 염선재가 나란히 서 있다.

특히 염선재의 주인, 순천 김씨는 단종 때 좌의정을 지낸 절재 김종서(1383~1453)7대손녀다.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난 때 단종을 지키려다 반역의 누명을 쓰고 참혹한 죽음을 맞았고, 직계 3대가 몰살에 가까운 화를 입었다. 후손들 또한 오랜 세월 신분을 감추고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러한 역사적 상흔 속에서 순천 김씨는 조상의 억울함을 밝히는 신원(伸寃)’을 가슴에 품고 명문가인 사계 김장생 가문에 계배로 들어왔다. 그리고 가문을 일으킨 여성으로 기록됐다.

이번 놀뫼신문 지령 제800[특집 인물탐방]에서는 이 같은 계룡의 역사와 여성의 절의 정신에 매료돼 두마면 왕대리에 귀촌한 여성·가정학 박사 한희선 교수를 만났다

 

 

 

서울에서 계룡으로, 인생 2막을 열다

 

한희선 교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수학했다. 1995년 성신여대에서 가정학 박사학위를 수료한 뒤, 가족과 젠더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다.

2015~20162년간 계룡성평등가족상담소를 운영하며 계룡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충청남도 양성평등 강사와 성별영향평가 컨설턴트로 활동해왔다. 그러던 중 2019, 그녀는 계룡 두마면으로 귀촌해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했다.

두마면 왕대리는 단순한 전원생활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에는 여성의 돌봄과 절의 정신이 켜켜이 쌓인 역사적 토양이 있는 곳이지요.”

한 교수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가족은 의무적 공동체에서 선택적 관계망으로

 

한 교수는 오늘날 가족의 변화를 이렇게 진단한다.

지금 우리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의무적 공동체에서 선택적 관계망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전환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그는 가족의 개념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 보호 안에 포함시키고, 복지 지원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와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족은 더 이상 혈연 중심의 전통적 틀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60세 이상 여성이 사라진다면?”

 

한 교수가 특히 강조하는 주제는 여성과 돌봄이다.

만약 어느 날 60세 이상 여성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의 질문은 곧 통계로 이어진다. 6만여 명의 가사·육아 도우미, 22만여 명의 돌봄·보건 서비스 종사자, 55만여 명의 청소·환경미화 노동자들. 그 손과 발이 멈춘다면 사회는 사실상 멈춰 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만큼 중요한 노동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 값싼 비용으로 유지해 왔습니다. 돌봄은 특정 대상에게만 요구되는 예외적 행위가 아닙니다. 사회 구성원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필수적 노동입니다.”

그는 이제 돌봄을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책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제도적 책임을 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돌봄은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투자입니다.”

 

광산 김씨 가문의 중심에 선 여성들

 

한 교수는 광산 김씨 가문이 부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돌봄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의정공 김국광,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으로 이어지는 가문의 중심에는 '양천 허씨''순천 김씨'라는 두 여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양천 허씨는 17세에 남편을 잃고 유복자 김철산을 업은 채 500리 길을 걸어 시댁 연산 고정리로 내려왔다. 시가의 문턱을 넘지 못해 초막을 짓고 기거했던 자리에는 오늘날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그 유복자가 낳은 아들 중 한 명이 바로 김국광이다.

순천 김씨 역시 17세에 사계 김장생의 계배로 혼인해 32녀의 전실 자녀를 포함한 8남매를 돌보며 가문의 안주인 역할을 감당했다. 김장생이 84세로 서거하자 삼년상을 치르고 담제와 길제까지 마친 뒤, 스스로 단식해 생을 마감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한 교수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생애 속에 조선 양반가 여성의 효열과 가족 돌봄이 응축돼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시대를 떠받친 정신적 기반이었습니다.”

 

귀촌 일기, 그리고 오늘의 질문

 

한 교수는 요즘 귀촌 일기를 쓰고 있다.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전통적 가치와 도리가 무너지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순천 김씨의 살신성인적 삶을 다시 조명하는 일은, 어두운 밤을 밝히는 작은 등불을 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계룡 두마의 고택과 재실, 그리고 유허비는 단지 옛이야기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오늘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돌봄의 가치를 되묻는 자리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학문적 경로를 걸어온 한희선 교수는 이제 계룡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연구와 실천의 길을 찾고 있다.

천하의 길지라 불리는 두마면 왕대리에서, 그녀의 인생 2막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펼쳐지고 있다.

 

전영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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