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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고요 속에서 1년을 설계하다, 공주 마곡사 템플스테이
새해를 ‘리셋’하는 여행
기사입력  2026/01/21 [11:35]   놀뫼신문

 

▲ 108배 프로그램(사진 제공 마곡사)     ©

 

 

()’을 표시하던 숫자가 12를 향하더니 어느새 1로 바뀌었다. 달력이 리셋(reset)되듯, 우리에게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도 초기화된 셈이다. 하지만 날짜 하나 바뀌었다고 삶이 곧장 새로워지지는 않는다. 지난 열두 달을 돌아보고, 병오년의 열두 달을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질문을 던지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로, 산사(山寺)만 한 곳이 또 있을까. 고요가 깊게 내려앉은 사찰에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마곡사다.

 

마곡사는 백제 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 고찰로,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운영되는 템플스테이는 단순한 숙박 체험이 아니라 쉼과 성찰을 주제로 한 체류형 여행이다. 당일형부터 12, 23일까지 일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으며, 요가·명상·싱잉볼·선명상·금강경 독송 등 체험형 프로그램과 휴식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 함께 마련돼 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도착 후 수련복을 지급받고 방 배정을 받은 뒤 간단한 안내를 듣는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는 순간부터 일상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요가와 명상 시간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특히 반응이 좋다.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몸을 천천히 풀다 보면 이내 땀이 배어나고,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고요한 공간에 적응하듯 명상 시간 중 곤히 잠이 들기도 한다. 은은한 싱잉볼 소리와 함께하는 명상은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을 천천히 이완시킨다.

 

사찰의 일상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도 템플스테이의 중요한 요소다. 참가자들은 범종 타종 체험을 통해 사찰의 하루를 여는 소리를 직접 울려본다.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종을 치려 하면 타이밍과 힘 조절이 쉽지 않다. 바로 곁에서 듣는 범종의 울림은 예상보다 깊고 크다. 그 소리는 사찰 안을 넘어 숲과 계곡으로 번져 나가며, 잠시 머무는 이들까지 고요 속으로 끌어당긴다.

 

108배와 스님과의 차담은 많은 참가자들이 가장 의미 있게 꼽는 시간이다. 절 하나하나에 온전히 집중하며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108번의 절을 마치고 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가벼워졌음을 느끼게 된다. 이어지는 차담에서는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스님의 담담한 말 한마디가 한 해를 관통하는 화두가 되기도 한다.

 

마곡사는 새해를 맞아 11일부터 219일까지 ‘2026 설날 맞이 23일 스테이라는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새벽과 저녁 예불을 비롯해 별관 앞마당에서 진행되는 별빛 명상, 군왕대 산행, 염주 꿰기, 백범 김구 명상길 걷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는 명상 시간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순간이다.

 

템플스테이 일정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순서는 사찰 안내다.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따라 마곡사의 전각을 하나씩 돌아본다. 대광보전 옆 계단을 오르면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보전 앞마당에 서면 마곡사 전각들의 지붕이 파도처럼 겹겹이 이어진 장관이 펼쳐진다. 조금 전 지나온 대광보전과 그 너머의 고방, 심검당, 범종각, 그리고 멀리 산등성이까지 이어지는 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 앞에 서면, 바쁘게 살아온 지난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대웅보전 옆으로 내려서면 마곡천이 흐른다. 겨울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지는 물길은 사계절 내내 이 땅을 적셔왔을 것이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해 춘마곡(春麻谷)’이라 불렸지만, 마곡사의 아름다움은 어느 한 계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징검다리를 건너 해탈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성보박물관, 명부전, 영산전 등이 이어져 천천히 걷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달력이 한 장 넘어가는 것으로 시간이 새로워지지는 않는다. 진짜 리셋은 잠시 멈춰 서서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마곡사에서의 하룻밤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점검의 시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시간은 여행이라기보다 한 해를 새로 여는 작은 의식에 가깝다. 고요 속에서 맞이한 새해는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 당일여행 마곡사공산성산성시장

* 12일여행 │첫째날│국립공주박물관→무령왕릉과 왕릉원→황새바위순교성지 │둘째날│ 나태주풀꽃문학관→책방, 잇다→중동성당

 

 

▲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본 풍경     ©

 

▲ 대웅보전     ©

 

▲ 마곡사 오층석탑과 대광보전 뒤로 대왕보전 지붕이 보인다     ©

 

▲ 마곡사의 겨울_ⓒ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중일     ©

 

- 여재민 기자

-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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