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로 작업하는 와이어 아티스트 이현 작가의 활동무대는 서울이다. 작업실은 고양시다. 경의선에 몸을 싣고 서울로 다가올수록 간이역 이름이 이상하다. 강매? → 화전 → 수색? 이 역명들을 한자로 뜯어보면, 분위기 급반전이다. 江梅 花田 水色 강에 핀 매화가 꽃동산 이루어 물빛에 비치나니~~~
이현 작가의 전시회가 물빛복합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작년에 개관한 탑정호 물빛문화공간은 이름 그대로 물빛 출렁이고 반사도 하는 공간이다. 그래설까, 작년 6월 개관기념초대전으로 테이프를 끊은 전시회는 김종범의《나의 정원, 탑정》사진전이다. 탑정호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야경도 압권이다. “사창에 비친 달빛 월색(月色)” 고요한 이곳에 봄 테이프 끊은 전시회 이름은 <나는 그런 모양이었다>. 3월 26일 시작하여 4월 26일까지 한달간이다.
이현 작가가 펀딩을 받아서 한 작품 “아르코 크라우드펀딩_7”은 해변에 설치되었다. 바닷물, 해풍과 교감하면서 수많은 언어가 교차한다. 지금 물빛1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실내 전시다. 공간은 모두 여섯 면. 방 이름을 보면 Untitled도 둘이지만 도로시, 수화, Gone, To S.Y. 등으로 이름표가 붙어있다. 주로 철사로 작업한 와이어 작품들이지만, 선보다 굵직한 드로잉 작품도 곁들여져 있다.
작가의 작품과 마주보면 그때의 느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하지만 작품해설이나 작가소개로 이해 폭과 깊이가 달라지기도 한다. 우선 작가 소개! 논산에서 자랐고, 학부는 디자인을 전공하였다. 취업 등 실용성에만 고민하다가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예술을 하고 싶어서 휴학을 한다. 여러 시도 후 선택한 것이 철사였고, 2019년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공간을 그리다: 선」이었다.
철사예술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이현 작가를 ‘세계 최초의 와이어 아티스트’라 지칭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객관적이다. “와이어 아트는 철사 같은 금속 선을 활용해 형태를 만드는 예술로, 선 하나로 공간감과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는 게 특징입니다. 고대 금속 공예에서 시작됐지만, 산업혁명 이후 철사의 대량 생산으로 대중화되었고, 20세기에는 알렉산더 칼더 같은 작가를 통해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발전했습니다. 현재는 인테리어 소품부터 순수 예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확장성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확장성. 그의 작품 중에는 사람 얼굴도 많다. 탈이 되기도 한다. 투구처럼 그 탈을 쓰고 연극도, 연주도 한다. 기업의 로고나 이미지가 와이어의 도움으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철사 하나가 꼬불꼬불 요술 부리면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는 점에서는 요술 같은 샌드아트와 교집합이 오락가락이지만, 그는 선을 고집한다.
“와이어 아트는 덜어낼수록 더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서,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고 핵심적인 선에 집중하는 과정 자체에 계속 천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처럼 여백의 미를 표현해주는 것 중에서 선을 대신할 만한 게 어디 있을까?
기자가 작가를 만난 때는, 개관하는 첫날 오전이었다. 응당 개막식이 있으려니 싶어 서둘렀는데 친척 지인 몇 정도였다. “논산에 친구도 없고 하여....” 오픈식 안 하는 이유 설명하면서 말끝 흐리는 작가는 수줍어하는 여고생 분위기다. “제가 작업실을 혼자 사용하다보니 평소 노출을 최소화하고 작품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까요...” 이렇게 시작된 대면 인터뷰는 길지 않았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좀더 엿볼 수 있는 아래의 직접화법은, 며칠에 걸친 메시지와 메일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현 작가와의 선문선답(線問線答)]
나는 그런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모양이었다” 이번 전시 제목이 인상적이네요. 고민 끝에 정했을 거 같은데, 제목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 이번 전시는 지난 3~4년 동안 나 스스로에게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에서 출발합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내기에는 개인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 시간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중심으로 담아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 아닐지도 모르는 순간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 그 안에 있었고, 그 감정들을 지나 지금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전시는 “그때 나는 그랬었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시선에서 풀어낸, 회고록적인 기록입니다.
얼핏 들으니 젊은 작가가 과거지향적인 것처럼도 들리네요?^
= 이번 전시 서문의 끝문장이 답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이 전시는 지나간 시간을 복원하려는 자리가 아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남겨진 하나의 형태를 지금의 자리에서 조용히 돌아보는 데에 가깝다. 나는 그런 모양이었다.>
어떤 작품이든 그 출발은 우리의 평소 생각, 가치체계인 거 같아요. 그걸 구상화하는 건 후속작업 같고.... 어려서부터 예술가의 길을 꿈꾸었나요?
= 학부시절 전공은 시각디자인이었어요. 시각디자인은 포스터, 패키지, 로고, 전체적인 브랜딩 등 비주얼적인 것 전반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디자인 전공하는 동안 색의 명도에 따른 무게감, 그에 따른 적절한 배치, 여백의 중요성 등 기본적으로 보기 좋은 것을 판단하는 능력이 길러졌다 생각합니다. 그때 쌓았던 미감들 덕분에 지금 작업하는 데 여백과 선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거 같아요.
철사를 구부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창조하겠다는 발상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 디자인 작업을 계속 하다 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진정 좋아서 선택한 길인지 의문이 생기더라구요. 스스로의 성장이나 성취보다는 취업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내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단순히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가리지 않고 시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철사라는 소재를 접하게 되었고, 그것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죠. 첫 개인전은 2016년, 그러니까 10년 전 5월 관악구에 있는 WUDERKIND에서 연「공간을 그리다: 선」이었습니다.
= 2019년 처음으로 기업과 협업했던 프로젝트입니다. 당시 삼성 갤럭시 노트 10 제품과 협업하여 체험존 공간을 제 작업으로 구성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 공간을 통해 많은 관람객들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개인 작업에 집중했다면, 이 협업을 계기로 작업이 하나의 ‘공간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게 되었고요. 이후 다양한 전시와 협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어요. 당시는 휴학생 신분으로 학과 졸업과 작업 사이에서 방향을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이 협업을 통해 ‘작가 이현’으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달까요. 해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 제 작업의 방향과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상징적인 경험으로 기억입니다.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 불러주었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저력은 물론 마케팅 효과라는 실용성도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후원도 있겠지만, 홀로서기 시간도 많았을 거 같은데?
= 예술가들의 한결 같은 고민 역시 돈과 시간일 거 같아요. 저도 좌충우돌하면서 크라우드 펀딩에 공모도 했어요. 2022년 ARKO 한국 문화예술 위원회 Tumblbug crowdfunding이 그것입니다. 이전부터 작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이 전시장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해당 펀딩을 계기로 보다 일상 속에서 사용될 수 있는 형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존 작업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테이블웨어로 활용 가능한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죠. 이는 작업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습니다. 기존에는 수작업으로 꼬아 연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용접’이라는 새로운 제작 방식을 익히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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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어 아트 실습 현대백화점 인재개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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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사용될 수 있는 형태>로 확장이라? 상당히 중요한 대목 같아요. 종이접기와는 다소 다르겠지만, 와이어 아트 역시 일상 속에서의 생활문화가 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와이어 아트가 종이접기처럼 생활 속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먼저 대중의 입장에서는 ‘어렵지 않다’는 인식이 들어얄 거 같아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예술이라기보다, 간단한 선부터 누구나 쉽게 시작해볼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경험이 쌓여야 자연스럽게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작가의 입장에서는 작업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일상 속으로 번역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키트나 워크숍, 공간 속 체험 형태로 확장해서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그동안 전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을 만나왔다면, 이제는 조금 더 가볍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만나서 함께 해보는 수업과 체험 실습이 확장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것들이 특정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으면 그야말로 살아숨쉬는 예술이 되겠지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이전에 진행했던 크라우드펀딩 ‘반려작품’ 시리즈를 발전시켜 테이블웨어 형태의 작품으로 확장해보고자 합니다.
실용에서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와 보죠. 여기 보니까 동물도 많지만 사람 얼굴도 꽤 많은데, 작업 오브제는 주로 어느 쪽인가요?
= 주 대상은 특정 사물이라기보다 ‘선으로 표현했을 때 가장 본질이 잘 드러나는 형태’입니다.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처럼 특징적인 윤곽을 가진 대상에 자주 끌리는데, 최소한의 선만으로도 형태와 감정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와이어 아트는 덜어낼수록 더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서,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고 핵심적인 선에 집중하는 과정 자체에 계속 천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와이어 아트는 설치도 상당한 변수 같아요. 여기 전시품들 보니까 그림자와 함께 세트로 해서 종합 완성되는 거 같은데 빛과 그림자 사이랄까요...
= 와이어 아트는 단순히 철사로 만든 형태 자체뿐만 아니라, 빛과 그림자까지 포함해서 완성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명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그림자가 또 하나의 드로잉처럼 확장되잖아요? 와이어 아트는 조형이면서 동시에 공간과 빛을 함께 다루는 설치미술적인 성격도 지닌 거죠.
나는 작품 감상 변수 중 하나로 빛만 거론했는데, 해변에 가면 바람도 있겠고.....
= 네. 선은 가장 단순한 요소이지만, 동시에 어떤 존재가 드러나기 직전의 상태에 가깝죠. 하나의 선은 방향과 흐름을 만들고, 여러 선이 모이면 비로소 하나의 윤곽이 나타나니까요.
나의 작업은 그 윤곽이 완전 고정되기 이전의 순간에 머뭅니다. 분명 어떤 형상을 암시하지만, 끝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 선들은 서로를 지탱하며 공간 속에서 느슨하게 연결되고, 그 사이로 빛과 공기가 스며들겠지요.
나는 이러한 상태를 통해 가시적인 대상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감각에 가까워지고자 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보고 있다고 믿는 것들 역시 끊임없이 변하고 흩어지기 때문이죠. 작업 속 형상들은 명확한 실체라기보다, 어떤 기억이나 감각이 잠시 형태를 갖춘 순간에 가깝다고 봐요. 선과 빛이 만들어내는 이 느슨한 구조 안에서, 형상은 완전히 완성되기보다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흩어지는 상태로 존재하고, 나는 그 사이에서 잠시 드러나는 어떤 윤곽을 바라봅니다.
이야기가 다소 형이상 철학적으로 흐르는 감인데, 작품에서 강조하거나 공유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게 뭣일까요?
= 제 작업은 ‘완전히 드러나기 직전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선은 가장 단순한 요소이지만, 동시에 어떤 존재가 형상이 되기 이전의 단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나는 형태를 완전히 닫기보다는, 일부러 비워두고 느슨하게 연결된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 사이로 빛과 공기가 스며들면서, 와이어 자체뿐 아니라 그림자와 공간까지 함께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고요....
이 작업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보고 있다고 믿는 대상 역시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흩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점입니다. 제 작품 속 형상들도 명확한 대상이라기보다, 어떤 기억이나 감각이 잠시 윤곽을 드러낸 순간에 가깝습니다. 결국 나는 그 완전히 정의되기 전, 잠시 드러났다 사라지는 경계의 상태를 바라보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경계선상이군요. 오직 철사 작업에만 집중하는 거 같은데 드로잉 작품도 한켠이네요?
드로잉 작업의 경우, 주로 와이어를 이용한 작업을 해오다 보니 표현 방식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아크릴, 유화, 오일파스텔 등 평소 자주 사용하지 않던 다양한 재료에게도 손을 뻗죠. 작업 방식과 사용하는 소재는 작가의 아이덴티티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스스로를 가두는 요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평면의 여자 얼굴 그래픽은 제가 와이어 작업뿐만 아니라 드로잉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와이어 작업에서 최소한의 선을 사용해 추상적이고 부분적으로 생략된 표현을 선호하듯, 드로잉 역시 지나치게 구체적이기보다는 다소 추상적이고 러프한 스타일로 작업하고 있죠. 이 드로잉은 시리즈 작업 중 하나로,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작품명은 ‘chaud’이며, 이번 전시에서는 와이어만큼 자주 사용하는 재료인 마스킹 테이프로 재현한 작업 또한 이 드로잉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작품 구상에는 아이디어, 철학도 중요하지만 감성의 영역도 못잖은 비중 같아요. 작업 전후에 직간접 영향을 주는 것들이 있다면요?
어릴 때부터 음악 듣고 노래하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학부 시절 밴드부에서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고요, 지금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음악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게 영감을 주는 요소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건 단연 음악인 거 같아요. 장르를 특별히 가리지는 않지만,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깊은 사색에 잠기고 싶을 때 자주 꺼내 듣는 곡이랍니다^
아, 그러고 보니 2020년에 마포구 오색칠에서 열린 오색 선(線) 전시회에서 뮤직 퍼포먼스 “Saxophone quartet & harp” 병행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군요. 오색(五色)이 각자의 색깔 유지하면서 조화 일구어가는 예술세계, 현실세계 기대하면서요, 긴 인터뷰 응해주어서 고맙습니다.
[대담]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