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범이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 왔다.
"선희야! 윤경아! 저 저 소리가 동순이의 목소리지 동순이가 불에 타서 죽는 소리이지?.
선희와 윤경이도 그 비명 소리에 그만 귀를 막고 말았다.
원두막의 불길은 무섭게도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기범이도 이제는 넋을 잃고 불길만 바라 봤다.
시간이 지나자 불길은 점점 작아지면서 하얀 연기만이 하늘 높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는 불길 속의 비명 소리도 그치고 달님도 구름 속으로 숨어버려 세상은 금 새 무서운 어둠 속으로 잠겨 버렸다.
기범이는 다시 땅을 치며 소리쳤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내가 동숙이를 죽였단 말 야 ",
기범이는 그만 땅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선희와 윤경이도 기범이를 달래지 못했다. 정말로 동순이가 불에 타 죽었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동순이를 그냥 만나게 둘 것을…
선희와 윤경이는 후회도 했다.
기범이는 냇둑에서 그만 쓸어 지고 말았다.
선희와 윤경이는 기범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 왔다. 집으로 돌아온 기범이는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는 마루에 앉아 있었다.
기범이는 넋이 빠져 멍청이가 되여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범이는 동순이가 비명을 질러대던 원두막으로 가서 정말로 동순이가 불에 타 죽었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 먼동이 트기 시작 했다.
기범이는 정신을 차려 마루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때 누군가 싸리문을 밀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침에 동순이의 편지를 갖다 준 전주 집 할머니 이다.
전주 집 할머니는 기범이를 보시자 떨리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물으셨다.
"기범아 원두막에 가서 동순이를 만나 봤느냐 ?
기범이는 전주 집 할머니가 묻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말았다.
"기범아 그러면은 동순이를 만나지 않았단 말이냐 동순이는 너를 그렇게도 만나보고 싶어 했는데. 한번 만나 줬으면 얼마나 좋아 했겠니, 이 무정하고 사람아, 그래서 네가 동순이를 불에 타 죽게 했구나."
"할머니 !뭐라고요. 불에 타 죽었다고요?
기범이는 그래도 설마 했었는데.
할머니 말에 기범이는 정신이 아찔하여 눈앞이 캄캄 했다. 기범이는 눈물이 나와 그만 울고 말았다.
"기범아 이제는 울어도 소용이 없게 됐다. 모두가 다 끝나 버렸어".
전주 집 할머니는 붙들고 있는 기범이의 손을 뿌리치고는 싸리문 밖으로 나가셨다“.
내가 동순이를 죽이다니 . 기범이는 너무 슬펐다.
기범이는 언제까지 이대로 앉아 울 수만은 없어 일어나서 불탄 원두막으로 갔다. 동순이 시체라도 찾아서 어디다가 잘 묻어 주고 싶었다.
날이 밝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불에 탄 동순네 원두막으로 모여 들었다. 그곳에는 동네 구장도 반장도 모두 나와 있었다.
구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공비들이 이곳 원두막에다 불을 지른 것은 첫째는 원두막 타는 불꽃의 신호로 공비들이 어디로 집결하여 습격을 하라는 신호일 것이고, 두 번째는 마을 앞 이곳에다 불을 놓으면 마을 사람들이 불을 끄러 몰려나올 때 그 틈을 이용하여 공비들이 마을로 들어와 식량을 훔쳐 가려고 꾸민 작전일 겁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 원두막이 타는데도 나는 나와 보지 않은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구장님의 말에 고개들을 끄덕이면서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