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미세 먼지로 인해 하늘이 뿌옇고 시야가 흐릿하다. 답답하고 암담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담함이 2년여를 끌어오면서 이제는 그 답답한 불확실성에 단련이 될 법도 하건만 여전하다. 우리는 오늘도 하루하루 온갖 정보들에 귀 기울이며 “언제쯤 이 안개가 걷히고 쨍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대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된 21세기 최악의 역병의 창궐로 인해 전 세계에 비상이 걸리고 지구촌이라 불리며 하루 또는 반나절이면 오가던 세계는 각 나라마다 입국 관문의 빗장을 굳게 잠그고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세계는 수출원자재와 물품들의 원활한 호환이 되지 않고 무역마찰과 국수주의로 회귀하며 다인종국가에선 인종차별과 폭동도 예사롭지 않게 일어나는 상황까지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수출과 수입에 큰 타격을 입었다. 방역의 일환으로 거리두기와 영업시간규제 등 정부지침에 따라 코로나19 를 이겨내기 위한 국가와 국민의 필사적인 노력이 이어졌다. 이제는 안개가 엷어지고 서서히 시야가 확보되려는 위드(with) 코로나, 즉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이란 시점으로 접어들려 하고 있다.
정부에선 코로나 19의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에 대해 공청회를 열어 단계적 일상회복 1차 개편안을 편성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서 여러 번에 걸쳐 재난지원금 등을 지급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의 삶을 위한 지원금과 정책들이 과연 진정한 국민을 위한 일인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든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를 토대로 신분상승이나 부를 이룩한다. 이에 대하여 굳이 왜곡된 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양해야 된다고 본다.
정치인이 ‘잘한 것’과 ‘잘한 것처럼 보이는 것’
인도 카스트 제도처럼 신분의 세습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이란 건 현대사회에 있을 수 없는 일이겠다. 하지만 “팬더믹, 기후변화, 4차산업혁명의 복합 전환기에 불평등 양극화가 심해지고 저소득층이 광범위해지는 상황에서 선별복지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전제는 타당할까? 정치적 의도가 있는 포퓰리즘에 의거하여 국민 기본소득이란 명분으로 각종 지원금을 남발하여 국가재정과 그 파급효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동조하기 어렵다.
우리는, 각종 재난지원금들이 정작 필요한 소상공인에겐 예상만큼 큰 위로가 되지 못했음을 실감하는 중이다. 정치시장에서 포퓰리즘은 선심을 쓰고 생색을 내며 주는 정치인이나 받는 국민이 단기적으로는 윈윈 게임을 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재앙을 초래하는 무서운 병폐가 될 수도 있다. 정치인들이 생색 내며 주는 돈은 결국 나라돈이고 나라돈은 결국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기에 결코 공짜가 아니다.
혹자는 “그 돈을 국민세금 아닌 기업에서 거두면 되지 않느냐?”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방경제 체제 하에서는 정부도 조세정책을 가지고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 때문에 법인세를 높이면 기업의 엑소더스(exodus)를 부채질하여 나라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돈을 거둘 세원이 말라 버린다.
복지 역시 그 불가역성에 대해 꼼꼼히 생각해 봐야 한다. 한번 그 수준을 늘리면 나중에 없던 일로 하고 원위치로 돌아가는 시행착오적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 순간만을 생각하고 대중이 집단으로 정치인에게 압력을 넣으면 대중의 인기에 연연하는 정치인들은 정작 나라의 장래를 위해 집단과 맞서 싸우기보단 선심 쓰듯 쉽게 양보하고 만다. 포퓰리즘을 신봉하는 정치소비자가 많을수록 공직선거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좋은 정치인은 낙선하고, 유권자와 야합하여 나랏돈이 제 것인 양 선심 쓰는 야바위꾼이 당선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고 쌓이면 결국 국가 위기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을 우리 국민들은 헛발 디딛지 않고 잘 헤쳐왔다고 본다. 오히려 위정자들의 오락가락하는 행태에 분노하고 허탈해하며 예부터 난리가 나면 임금과 신하는 도망 가도 백성들은 일어나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던 강인한 민족임을 자부하며 작금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나아가고 있다.
위정자들 역시 예전의 무지했던 백성이 아니고 늘 깨어 있는 국민임을 인지하고, 모든 국민이 당을 떠나 위정자들의 정책들이 진정한 국민을 위함인지 아닌지로 판단하고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곧 이 짙은 안개가 걷히고 맑은 하늘이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