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가 임의수 작품전]
펜촉과 산사가 만날 때
“수덕사, 펜화로 만나는 풍경”
임의수 펜화작품전이 9월 27일부터 10월 3일 예산 수덕사에서 열렸다. 전시된 작품은 총 38편이며, 수덕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수덕여관, 솔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임의수 펜화가는 35년간 전북과 충남 중·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해왔다. 퇴직 후에도 우리 문화 및 문화재 강연과 함께 펜화를 계속 그리고 있다. 펜의 세밀한 터치가 도드라지는 임의수 펜화는 한 편당 1주일여 걸리는, 정성에 정성을 기울인 작품들이다.
작품을 접한 관람객들 일부는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 사진을 이용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은, “사람의 손으로 이처럼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느냐?”며 의아스런 눈빛과 감탄하는 반응을 보였다. 주말 연휴엔 작품에 관심있는 등산객들이 대거 몰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관람하고자 전시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람객이 많았다. 기다리다 못한 일부 관람객들은 포기하고 전시장을 떠나는 일도 있었다.
첫날은 김지철 충남교육감, 마지막날은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이 찾았다. 교직생활 절반을 논산에서 보낸 그는 계룡 용남중학교에서 6년간 근무하기도 하였다. 계룡문화예술의전당에서는 두 번 전시회를 가졌는데, 2011년 충남민족미술 17년展, 다음해에는 제10회 충남민족미술전(삶의 조각 거울이 되어)을 개최하였다. 현재 계룡종합사회복지관은 사회복지법인 ‘수덕’이 위탁 운영중인데, 예산 수덕사의 ‘수덕’이다.
전시회 첫날, 수덕사 부주지 주경스님이 개시 기념차 ‘수덕사 심연당 불이문’ 작품을 즉석에서 구매하였다. 다른 전시보다 특별한 점은 펜화를 보급하기 위해, 화가가 그동안 그려온 작품 중 100여 작품을 선정, 200점을 40×30cm 크기로 특별 인쇄하여 제작 원가로 내놓았는데, 전시 중반에 모두 팔려나갔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주로 수덕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대웅전, 원통보전, 사면석불, 동선암, 금강보탑 등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38편 중에서 6점만 지상갤러리로 모신다. 아래 작품과 해설은, 임의수 작가가 직접 맡았다.
- 이진영 기자
덕숭산 자락에 자리잡은 수덕사는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크게 선풍(禪風)을 일으키며 법맥을 이어온 사찰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만나는 수덕여관은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뤘던 고암 이응노 화백의 정신이 깃든 곳이며, 원통보전 일원의 환희대와 견성암은 신여성으로 화려한 삶을 누렸던 일엽스님이 수도하던 곳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시대 지어져 우리나라 고건축의 기준이 되는 건물로 거대하면서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 더욱 친근감이 간다. 특히 측면에서 보면 소의 꼬리와 같다고 해서 붙인 기둥 위의 우미량과 덩굴식물 모양의 파련대공 곡선이 조화를 이뤄 부드러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 임의수(펜화가·역사문화유산해설사)
▲ 수덕사 대웅전과 금강보탑/ 종이에 펜/ 60×42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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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대웅전 측면/ 종이에 펜/ 50×4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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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년 고려 때 세운 맞배지붕으로 조용한 가운데 단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며 엄숙하고도 근엄한 건물이다. 건물의 모든 짜임은 필요한 것만으로 최소화해 여타의 장식을 배제하였고, 기둥과 창방의 연결고리인 공포는 단순한 가운데 힘이 넘친다.
특히 대웅전 측면의 면 분할은 안정과 상승의 조화를 절묘하게 보여주며 직선과 곡선의 어우러짐이 건물의 중압감을 경쾌하게 만들어주어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다.
▲ 수덕사 입구 수덕여관/ 종이에 펜/ 52×36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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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수덕여관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된 동백림 간첩단 사건의 주인공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잠시 머물며 자신을 추스르던 사적지이다. 고암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적 실험을 끊임없이 추구하여 ‘문자추상’이라는 그만의 세계를 구축, 한국 전통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예술가였다. 80세가 넘도록 끊임없이 진화하며 어떠한 역경에도 굽힘 없이 예술혼을 불태웠던 근현대 화가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화가로 남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과 김홍도 신윤복을 최고로 치듯이….
또한 수덕여관은 고암 이응노의 전처 박귀희 여사와 일제 강점기 여성운동가 겸 언론인, 작가였던 김원주(일엽스님)와 최초 서양화가 나혜석, 김원주의 친아들로 일본 북종화의 대가로 성장한 김태신(일광스님)의 자취가 눈물과 한으로 새겨진 흔적의 근현대사 현장이기도 하다.
▲ 수덕사 등산로에서 만난 사면석불/종이에 펜/ 40×55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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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인근에서 출토된 사면석불(보물 제794호)로, 원형은 봉산면 화전리 보호각 안에 있다. 안타깝게도 머리와 양팔이 마모되어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몸체의 조각 솜씨가 자못 수려해 서산마애삼존불에 뒤지지 않는 석불상이다.
수덕사 관음전을 뒤로하고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마주하는 이 사면석불은,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을 원형에 가깝게 모방하여 복원한 모습이다. 비록 1,500여 년이 지나 현대기술로 복원하였지만, 기품있는 모습에 반가움이 앞서는 당당한 백제계 석불상이라 하겠다.
▲ 예산삽교석조보살입상/ 종이에 펜/ 30×42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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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삽교의 수암산, 세심 온천탕 뒷산에 10분 정도 오르다 보면 만나는 고려시대 보살상으로 훤칠한 키에 아무런 꾸밈이 없어 소박함이 묻어난다. 큰 키에 비해 눈 코 입은 작은 편으로 수줍음을 머금고 겸손하게 다가서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표정이다.
아마도 산길을 걷는 모든 이들이 무사하기만 염원하는 표정 같아 이 불상을 만들었던 옛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며, 작가는 이 보살상이야말로 우리나라 석불상 중 겸손하면서도 수줍은 미소의 불상 표현으로는 으뜸이라고 귀띔한다. 보물 제50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예산 추사고택/ 종이에 펜/ 50×4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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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추사체를 창안한 김정희 선생의 고택으로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의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해 임금의 사위인 부마가 되어, 이 고택도 당시에 지어졌다. 한양에서 대목수인 경공장까지 데려와 지었다고 하며, 비용은 충청도 53개 고을에서 한 칸씩 부조하여 53칸짜리 대 저택을 지은 것이니 당시 추사 집안의 세도는 크게 높았다. 반면 추사고택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충청도 양반가 주택의 모습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 태안 드르니항 꽃게랑대하랑다리/ 종이에 펜/ 78×35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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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드르니항과 안면도 백사장 항구를 잇는 길이 240m, 너비 4m의 인도교로, 해 질 녘이면 낙조가 아름답고 야간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화려해 바다 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곳이다. 2013년 6월 말에 완공,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몰려 태안군의 상징처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