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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수의 스케치-4] 논산 쌍계사
기사입력  2020/09/25 [15:28]   놀뫼신문

[임의수의 스케치-4] 논산 쌍계사

섬세하며 화려한 꽃창살의 다포식 대웅전

 

 

논산팔경 중 하나로 저녁 종소리가 마음을 울린다는 논산시 양촌면의 쌍계사를 찾아갑니다. 예전만 하더라도 마을길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던 길이 어느새 마을과 마을 사이를 관통하여 일직선으로 번듯하게 놓였습니다. 포장된 주차장까지 새롭게 자리잡아서인지 정겨움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차를 세우고 절골저수지 왼쪽으로 난 포장길을 따라 쌍계사로 걸음을 옮깁니다. 두 갈래 갈림길에 다다르니 숨죽일 듯한 고요함에 흠칫 놀랍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영명각이란 돌에 새긴 이정표가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영명각, 죽은 자들의 혼백을 위무하는 장소로 영혼들이 쉬는 곳입니다. 1970년대 중반 대전과 청주 사이에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무연고 묘소에서 나온 유골을 모아 쌍계사에 안치하면서 후에 세워진 봉안당이, 즉 영명각이 가까이 있기에 이렇듯 조용한 것이겠지요. 

잠시 갈림길을 지나 쌍계사로 발길을 옮기니 예전의 정취 그대로 일렬로 늘어선 부도(승탑)들이 인사하며 방문객을 맞습니다. 이처럼 소박하며 조촐한 9기의 부도가 늘어서서 마치 손님을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와 손을 내미는 것 같습니다. 

고려 시대 14세기 중엽에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규모가 작은 절집이다 보니 사찰마다 흔히 보는 일주문이나 천왕문도 없습니다. 절 마당의 축대와 함께 이어진 층계와 누각 아래 쌍계루라는 편액을 보면서 절 마당을 오릅니다. 영명각이 있어 호젓하고 고요한 분위기는 금세 사라지고 거대한 다포계 팔작지붕의 대웅전이 불명산[작봉산]을 배경으로 화려함을 뽐내며 버티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규모로 보아 큼직하고 듬실한 전각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음직하지만, 화려하고 웅장한 대웅전에 비해 조촐한 두세 채의 전각만이 초라하게 대웅전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조선 초기에 여러 전각들이 헐리어 나가지 않았나 합니다.

숭유억불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조선 시대 초기에는 불교의 폐단을 없앤다는 구실로 도심지에 있던 많은 사찰이 모조리 불살라지고 뜯겨나가는 수난을 당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절집의 질 좋은 목재의 부재들은 분리되어 양반집의 자재로 약탈의 대상이 되었고, 그 터 역시 이리저리 찢기고 나누어져 조선을 건국한 공신들에게 전리품으로 분배되었습니다. 때로는 산속의 사찰도 모진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폐허가 되어 버렸지요. 임진왜란 때의 불교 문화재 파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이렇듯 쌍계사도 지난 세월 동안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 견뎌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명산 남쪽으로는 되재성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쌍계사와는 직선거리로 2km도 되지 않습니다만 행정구역상으론 전북 완주군 화산면입니다. 조선 말기, 사찰의 명맥만큼은 어떻게든 이어가고자 전각 일부를 헐어 되재성당을 짓는 자재로 천주교인들에게 팔았던 것이지요. 참으로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 여기 쌍계사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만 조촐한 명부전과 응진전에 안에 모셔진 조각상들은 근엄한 모습과는 달리 어수룩하면서도 웃는 얼굴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때로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으로, 턱을 괴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형태로 친근함과 개성미를 물씬 풍기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해학과 토속미가 결합한 민중화된 불교미술의 진가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조선 영조 때 지은 대웅전은 보물 제408호로 정면 문에 달린 꽃창살이 독특합니다. 건물의 정면이 다섯 칸이니 양쪽으로 달린 10개의 문짝에는 각각 모란, 국화, 연꽃무늬들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보물로서의 가치 또한 이 독창적인 꽃창살의 무늬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화려하게 각각의 닫집(건물 안에 있는 또다른 모형의 집)을 넣어 3구의 불상을 모셨습니다. 석가와 아미타, 약사불이며 풍만한 얼굴과 자비로운 표정에서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로 이어지는 불교 조각의 맥을 이은 수작입니다. 1605년 3~7월 원오스님의 주도 하에 신현, 청허스님이 흙으로 빚은 소조불입니다. 원오스님은 조선 중기 조각승으로 유명하며 현재까지 30여 점의 작품(불상)이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만든 사람과 제작연대가 확실하여 2015년에 보물 제1851호로 지정되었답니다. 

 

- 임의수(펜화가·역사문화유산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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