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면 월성3리 한글대학] 김순례 어르신
"젊어서는 자식 공부, 지금은 내 공부"
성동면 월성3리에서 큰아들 내외와 함께 사시는 김순례(金順禮, 88세) 할머니는 요즘 한글 공부하는 재미에 폭 빠져 지내신다. 젊어서는 3남1녀의 자식공부 시키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가장 큰 낙이었다. 이제는 마음껏 내 공부하니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어느 비오는 여름 날 오후 할머니를 댁으로 찾아뵈었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시집
할머니의 친정은 부여 석성면이다. 할머니는 21살 때 이곳 논산 성동면으로 시집을 왔다. 남편(강운희, 25년 전 별세)은 논산의 대건고등학교를 나온 젊은이였으니, 당시 시골에서는 꽤나 보기 힘든 인텔리였다. 시집은 많지 않은 땅으로 농사를 짓는 빈농이었지만 교육열은 대단한 집이었다.
남편은 2남4녀 중 맏아들이었다. 그러니 시동생과 시누이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해주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할머니는 넉넉지 못한 가정의 맏며느리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할머니는, 자기는 못 배웠지만 남편 동생들 공부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시동생은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올 때면 항상 “어머니! 저 왔어요.”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형수님! 저 왔어요.” 하면서 형수를 먼저 찾을 정도로 시동생과 시누이들에게 잘했다.
“맏며느리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시동생, 시누이들 잘 챙겨주어야죠. 말없이 저를 잘 따라준 시동생 시누이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눈빛이 흐릿해진다.
자식들 열심히 가르치다
할머니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3남1녀를 두었다. 살아 생전 남편이 늘 하던 말이 있었다.
“너희들이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그까짓 공부시키는 거 소 등허리에 터럭지 하나 빠지는 것처럼 표도 안 났을 터인데,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나 너희도 고생, 나도 고생한다.”
할머니와 남편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새끼를 꼬아 그것을 팔아 자식들 학비에 보탰다. 당시에는 새끼를 꼬아 파는 것이 농촌의 유일한 부업이었다. 낮에 농사일로 피곤한 몸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둘은 밤을 새워 새끼를 꼬았다.
둘은 남들보다 더 여물게 꼬고 길이도 넉넉하게 하여 중간상인에게 넘겼다. 그래서 그 상인은 항상 남들보다 값을 더 쳐주었다. 지금도 그 상인은 옛날 일인데도 할머니와 남편의 완벽하고 성실한 새끼 꼬기를 잊지 않고 고마워한다고 말한다.
남편 강운희 님은 역시 배운 사람답게 항상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일반 농사로는 승부를 걸 수 없다 생각하고 그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하우스농사를 시작했다.
하우스에서 특용작물을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모험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들은 하우스를 짓고 토마토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역시 남편의 예상대로 벼농사보다 더 많은 수입을 낼 수 있었다. 이렇게 번 돈은 모두 자식들 공부시키는 데 아낌없이 썼다.
자식들 모두 나름 성공하다
자식들은 하나 같이 부모의 마음을 알았는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고, 모두 잘 자라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부모들이 덕을 잘 쌓아 자식들 잘 되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큰아들은 고향을 지키며 어머니를 모시고 큰 농사를 짓고 있다. 80마지기의 벼농사와 수박 상추 등 하우스농사도 짓고 있다.
“우리 큰아들 내외는 정말 잘해요. 항상 곁에서 이 어미를 지켜주니 든든합니다. 요즘 내가 공부하는 것도 얼마나 응원하고 도와주는지 몰라요. 내가 영어도 공부하니까 우리 엄마 미국 여행시켜 준대요.”
둘째와 셋째 아들은 서울의 일류대학을 나와 하나는 대기업 임원을 하고 지금은 은퇴를 했다. 또 하나는 경기도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딸도 역시 부여에서 일가를 이루고 잘 살고 있다.
“젊어서는 정말 어렵게 공부시켰어요. 없는 시골에서 줄줄이 대학 공부시키느라 남의 빚을 써야만 했죠. 그래도 행복했어요. 애들이 열심히 공부했고, 또 우리 내외는 그걸 보람으로 알고 더 열심히 일을 했으니까요.”
할머니는 “남편이 좀 더 오래 살아서 자식들 성공하여 호강시켜주는 효도를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하며, 그걸 다 받아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갑자기 떠난 남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이제는 내가 공부할 차례
요즘 할머니는 한글대학에 나가서 공부하는 재미에 폭 빠져 지내신다. “처음에는 마을에서 몇 명이 함께 시작했는데,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가서 지금은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내가 호강해도 되냐”고 하신다.
“너무 재미있지요. 글 쓰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림 그리는 것도 신나요. 그래서 내가 그린 그림과 내 생각을 적은 글을 모아서 시화전을 여는 것이 제 목표랍니다. 구십 다 된 노인이 꿈도 야무지다고 하겠지만, 그게 제 소원인 걸 어떡합니까?”
할머니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날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큰아들이 “병 나시겠다, 그만 주무세요.’ 한단다. 옛날에 할머니가 밤 늦게까지 공부하던 자식들에게 하던 말을 이제는 당신이 듣는 것이다.
또 큰아들은 내외는 일주일에 두 번 할머니 한글 공부하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점심식사도 미리 다 준비해 놓고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린다.
“시장님은 선생님 보내서 공부시켜주지, 면장님은 공책과 연필 사다주지, 내가 요새 호강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애들 빚내서 공부시켰는데, 애들은 나한테 공책 한 권 안 사주네요.” 할머니의 표정이 익살스러운 개구쟁이다.
할머니는 잔병 하나 없이 아주 건강하시다. 매일 규칙적인 운동도 하시고 식사도 아주 잘하신다. 무엇보다 밝고 긍정적인 마음이 할머니의 건강의 최대 비결인 듯하다. 할머니가 더욱 건강해지셔서 당신의 소원이신 시화전을 여는 날이 꼭 오기를 바라며 할머니의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