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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노트] 연무읍 고내2리 김금심 어르신 "한 동네서 평생 살다"
기사입력  2020/07/23 [16:10]   놀뫼신문

[인생노트] 연무읍 고내2리 김금심 어르신

한 동네서 평생 살다

 

 

 

논산시 연무읍 고내2리에 사는 김금심(87세) 할머니는 그 동네에서 태어나고 한 동네로 시집가서 애 낳고 농사지으며 평생을 고내리를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할머니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옛집을 리모델링을 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삶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라고 할머니는 말한다.

 

지척이 친정인데 그렇게 멀 수가

 

할머니는 나이 17살에 한동네 사는 신상근(당시 20세)님에게 시집을 갔다. 할머니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친정아버지가 새장가를 들었는데, 새엄마가 당신과는 9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일찍 시집을 보낸 것 같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우리 아버지랑 시아버지가 한동네 친구였어요. 그래서 아버지들끼리 서로 사돈 맺자고 했던 모양이에요. 거기다 우리 아버지가 새엄마를 얻었는데, 나와 나이 차도 많지 않고 해서 아마 많이 불편하셨던 모양이에요. 이래저래 일찍 시집을 가야 했던 이유지요.”

시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홀시아버지만 계셨다. 게다가 남편은 6.25 난리 통에 나를 홀로 남게 두고 전쟁터로 나갔다. 하루하루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단다.

“지금 같았으면 안 살았어요. 그러나 그때는 그런 걸 몰랐죠. 그리고 시아버지는 엄청 엄하신 분이었어요. 성격도 팍팍하시고요. 친정을 지척에 두고 못 가게 하셨어요. 그런 시아버지를 제가 30년을 모시고 살았어요.”

할머니는 시아버지의 시집살이를 겪으면서도 억척같이 일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시집의 집안 형편은 점점 나아졌다. 할머니는 매년 논을 세마지기씩 샀다. 그래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22마지기의 논을 가진 중농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7남매 잘 자라주어서 독립시키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사이에 1남6녀의 칠남매를 두었다. 어려운 집안 살림에 마음껏 공부는 시키지 못했지만 굶기지는 않았다고 했다. 자식들은 그 엄마의 마음을 알았던지 정말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그 중 둘째딸이 시집가서 잘 살다가 그만 자궁암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일찍 여의었는데, 그 일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가 되어 그 딸 생각만 하면 쓰리고 아리다고 한다. 15년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다가도 일어나 눈물을 흘린다. ‘자식이 죽으면 어미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그런 가운데 또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며 사위와 며느리 보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특히 며느리 볼 때가 제일 기뻤다는 할머니.

“우리 며느리 자랑 좀 해도 되나요? 100점 만점에 100점이에요. 예쁘고 착한 며느리예요. 지금은 남매를 두고 아주 잘 살고 있지요. 잘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지금은 이웃사촌 덕분에 잘 살아요

 

“요즘 가만히 있으면, 한 해 한 해 나이 먹고, 애들 모두 나가 살고, 괜히 내 신세가 처량해지는 것이 슬퍼져요. 왜 슬플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 인생이 얼마 안 남은 거예요. 인생이 다 그런 가 아니겠는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할머니는 요새 더욱 하루하루를 즐겁고 활기차게 생활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한다고 말한다. 다행히 좋은 이웃들 덕분에 요즘은 안심도 되고 더없이 행복하단다.

“작년에 몹시 아파서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는데 목사님과 이웃들 덕분에 빨리 병원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이웃사촌이 먼 동기간보다 낫다는 말도 있잖아요. 세상은 변했어도 위 마을 인심은 변함이 없답니다. 정말 참 인심 좋은 마을입니다.”

할머니는 현재 다리와 허리가 아파 거동이 많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웃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

 

 

 

 

한글대학이 빨리 개학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20년 전에 남편이 돌아가시고 힘든 딸기농사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 TV시청과 주일에 맞추어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전부란다. 그동안은 한글대학 덕분에 한글공부도 하고 재미있는 미술과 공작 등을 해서 너무 행복했는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공부도 못한다고 한 걱정을 하신다.

“한글공부를 할 때는 무엇보다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우리 마을에서는 모두 11명이 공부를 하는데 모두 너무 재미있어 한답니다. 김요혜 선생님이 얼마나 잘 가르치시는지 몰라요. 그리고 마치 부모님을 모시듯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정성껏 우리들을 대해주시니 큰 대접을 받는 것 같아 항상 송구스럽지요. 하루빨리 코로나가 물러가서 다시 공부가 시작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시면서 할머니가 즉석에서 당신이 과거에 지으신 글짓기를 외워주셨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우리 대한민국.

따뜻한 봄, 꽃 피고 아름다운 봄이 왔습니다.

뜨겁고 힘든 여름, 쌀쌀한 가을.

우리 인생도 똑같습니다.

나라와 가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밥도 못 먹었습니다.

공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장님이 좋은 기회를 주셔서 공부해서 이제는 읽을 수 있습니다.

쓸 수도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선생님은 학생들을 부모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우리 좋은 세상 살아갑시다.”

 

한 번도 그 마을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으신 김금심 할머니. 그만큼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할머니의 지나온 인생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힘든 삶이었지만 그래도 평생 욕심 부리지 않고 진실하게 살았다’고 하시면서 자식들이 잘 살아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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