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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강경, 누구까지 만났니?”
[호국보훈의 달 6월에 돌아보는 강경]
기사입력  2020/06/10 [16:35]   놀뫼신문

[호국보훈의 달 6월에 돌아보는 강경]

“숨겨진 강경, 누구까지 만났니?”

 

6월은 6일은 현충일, 10일은 6·10민주항쟁기념일, 25일은 6·25한국전쟁일이다. 논산시는 제65회 현충일 추념식을 6일 오전 10시, 전국 사이렌에 맞춰 강산동 충령탑에서 거행하였다. 강경에서는 채운산정에 있는 순국지사 충혼탑에서 이영태 강경읍장과 청소년선도회 주관으로 간소하게 치뤘다. 

강경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최근 강경읍 중앙리 3-1번지 일원 [강을 담다 산을 닮다 강경고을] 도시재생사업 외에도 논산근대역사문화촌 조성사업, 강경산 문화공간 조성사업, 소금집 문화교양공간 조성 등 충남 근대역사문화의 중심지인 강경고을의 주거지와 상업지역을 중심으로 역사문화자원 활용 재생,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살기 좋은 주거환경 조성사업을 통한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활성화를 추진중이다. 

강경은 도처가 역사요 곳곳에 삶의 흔적들이 배어 있다. 그 중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도시 강경을 집중 조망해 본다. 

 

▲ “김대건 신부 사목지성당” 외부와 내부     ©

 

 

▲ 강경고을 도시재생사업계획     ©

 

 

 

 

 

 

강경의 정신문화를 찾아서 

 

강경근대화 거리에 대한 투자와 변화의 와중에도 아쉬운 대목이 하나 있다. 강경을 강경으로 있게 했던 정신적 유산들이다. 강경은 자본주의 정신도 흘러넘쳤지만 철학과 사상, 종교의 발원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주교에서는 “김대건 신부 사목지성당‘을 세워 당시의 천주교 전래 역사를 재현해 놓았다. 강경역사문화연구원에서는 매년 강경역사문화학교와 도슨트훈련학교를 통하여 강경학을 집중 연구, 전파중이다. 유형의 문화재뿐 아니라 무형문화와 인물들에 대한 조명이 의미로워 보인다. 다음 페이지는 강경역사문화연구원이 발굴해온 “강경의 정신문화(인물과 사상, 정신세계)”들이다. 

 

1. 충청도 대규모 최초 삼일만세운동지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옥녀봉 삼일독립만세운동은 충청도 대규모(500명 이상) 최초 만세운동이다.  이 운동은 천안 병천 아우네 장터보다 22일 먼저다. 헌병과 경찰이 삼엄한 경계 중에 7차례 계속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2019년 놀뫼신문 연중기획 시리즈 참조)

 

2. 최초 신사참배거부지

1924년 10월 11일 강경성결교회 김복희 교사(강경소학교 여훈도)의 주도 아래 62명이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 교사는 면직당하고 학생들은 퇴학처분 당했다. 배후에는 백신영 전도사가 있었다. 신사는 3종류가 있다. * 천황을 숭배하는 신사(관공립신사),  * 전범들을 숭배하는 신사(창건신사) *신앙적으로 신을 숭배하는 신사(거류민 봉제신사)  일본은 천리교, 남녀호랭경교, 동방요배로 일본을 경배하도록 종교적 침탈행위도 자행하였다.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국내 최초 침례교회] = 옥녀봉에는 1908년 일제에 의해 세워진 신사가 있었는데 1940년대에 그 신사가 낡고 협소하여 다시 크게 건축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강경침례교회 대지가 필요했다. 뜻대로 되지 않자 1942년에 침례교 지도자 32명을 원산의 헌병대로 끌고 가서 폭행하고 감금하였다. 그때 등기 명의자 김재형, 전치규 목사도 함께 끌려갔는데 전치규 목사는 함흥형무소에서 1944년 2월 13일 옥중에서 순교하였다. 이 현장에서 6월 22일 <한국 최초침례교회 ㄱ자형교회 검증을 위한 학술발표회>가 열린다. 출제자는 윤석일 강경역사문화연구원장이고 논찬자는 김용복 교수(침례신학대학)이다. 

 

3. 최초 일본역사수업 거부지

조선총독부의 지침으로 “조선역사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역사를 가르치라”는 명에 의하여 조선 역사선생을 내보내고 일본역사선생이 부임하여 가르쳤다. 이 때에 상애어린이 소년단 8명은 일본역사 수업을 거부하여 교장실에 끌려가 호통을 당했다. 그러나 행동반장 윤판석은 찻종지를 들어 교장의 이마에 던지고 자퇴의 길을 갔다. 그 후 독학을 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 보내는 운동을 하였다.

 

4. 강경경찰서 83위 순국 경찰관 순국 정신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6사단의 남침을 방어하고 강경을 사수하려고 정성봉 서장 외 82명의 경찰관들이 끝까지 싸우다 강경 현장에서 순국한 사건이다. 1950년 7월 16~18일 삼일전투였다. 이 사건은 정현수 저 『한국전쟁 속의 강경』 속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5. 병촌성결교회 66명 순교사건

한국전쟁 당시 퇴각하는 공산군들이 병촌성결교회 교인들을 모아 놓고 이틀간에 걸쳐 66명을 칼, 몽둥이, 죽창으로 무참히 살해하였다. 남자 27명 여자 39명 성도들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기도와 찬송을 드렸고, 오히려 공산군들에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잃지 않았다. 이에 성결교단에서는 병촌성결교회에 순교자 기념탑을 세웠고 병촌성결교회에서는 순교 기념관을 세워 이 순교정신을 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6. 스승의 날 발원지

 1958년 강경여중고에 근무 중인 윤야중(노성면 고아리) 선생이 병으로 누웠다. 이에 JRC 단장인 노창실(제8회 졸업생)의 제안으로 단원들이 병석에 누워 계신 선생님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퇴직한 은사를 찾아뵙는 등 스승 존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63에 <은사의 날>을 제정할 것을 단원들이 결의하고, 당시 JRC 단장이었던 윤석란(1946년생)이 청소년적십자(RCY)의 이름으로 제안하였다. 1963년에 5월 26일이 <은사의 날>로 제정되었고, 1982년에는 국가에서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법제화되었다.

스승의 날과 사제동행의 정신은 강경의 팔괘정(八卦停)에서 찾을 수 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1548~1631) 선생이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임리정을 건립하고 강학하였다. 후에 송시열 선생은 스승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제자의 마음에 임리정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팔괘정을 건립하였다.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애뜻한 마음은 그때에도 담겨져 있던 것이다.

 

7. 최초 경로당과 경로헌장비

1956년, 경로당(만수재)과 옥녀봉 경로헌장비를 송재 윤훈 선생의 의지와 업적으로 세웠다. 송재 선생은 1917년 2월 28일, 부여 세도면 간대리에서 태어났다. 후에 강경으로 옮겨와 살며 강경중앙초등학교, 강경중학교, 강경상업고등학교 육성회장과 읍의회 의원과 번영회장 등으로 지역발전을 위하여 온갖 애를 썼다. 지역 3청사 대책위원장으로 봉사하다가 1973년 10월 20일에 교통사고로 운명하였다(향년 57세). 온 읍민이 애통하며 읍민장으로 장사한 뒤 그를 추모하여 옥녀봉에 추모비를 세웠다. 윤훈 선생은 강경에 1955년에 “만수재”란 최초 경로당을 세웠고, 매년 칠월칠석 날이면 효자, 효부들을 표창하였다. 옥녀봉에 대한민국 최초 경로헌장비가 세워져 있고, 강경읍민이 세운 추모비와 호를 딴 ‘송재정’이란 정자가 있다.

[목촌 진창옥 선생의 봉사사상] = 선생은 강경제일감리교회 30대 장로로 지역발전을 위하여 힘썼다. 특히 어려운 이웃을 몰래 돕는 일에 앞장을 섰고 항상 봉사의 정신과 삶으로 본이 되신 분이시다. 읍민이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옥녀봉에 공적비를 세웠다.

 

8. 한국전쟁 순국·순교자의 고장과 순교정신

채운산정에 순국지사 충혼탑에는 한국전쟁 당시 포의지사(布衣志士)로 고향에 남아 고향을 지키려는 불타는 애국심으로 애국 애향하시다가 적탄에 산화하신 영령들의 넋 38위의 순국지사 명단이 새겨져 있다.

[이화교회 3인(설인수, 손정석, 이진팔) 순교] = 논산시 관촉동 도로변에 있는 자유수호 순국지사 위령비의 순국자 2,104명 명단에 이들 3명의 이름도 올라 있다. 이화감리교회는 2014년에 순교비를 세워 이 분들의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강경침례교회 순교자 이종덕 목사] =  침례교단의 2대 감목으로 퇴각하는 공산군에게 끌려가 논산천과 강경천 삼각지의 갈대밭에서, 함께 끌려갔던 청년 2명은 도주시켜 살리고 당신은 그 자리에서 순교하였다. 그 현장에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반공소년 한완봉 순교] = 한완봉(세례명 방지거)은 옥녀봉 밑에서 만세를 부르며 총살당했다. 그의 묘는 채운산에 있는데, 그 옆에 그의 반공사상을 기리는 비가 있다.(그가 총살당할 때 몸에 지였던 피묻은 태극기가 강경역사관에 있다.) 

[순국열사 안순득 여사] = 공산군에게 끌려가 현재 바이오대학 뒷산(공동묘지)에서 총살 당하는데 김생곤 강경중앙감리교회 청년회장과 함께 순국하였다. 그녀는 “쏠 테면 쏴라.”하며 만세를 부르며 순교하였다. 옥녀봉에 그녀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9. 판소리 중고제 발원지

판소리 중고제 시조 명창 김성옥(1801~1834) 생가와 (강경읍 옥녀봉 일명 일끝리) 후학들을 가르친 학원이 있던 곳이다(옥녀봉 ‘대가’ 별채)

 

10. 거문고 산조의 탄생지

거문고 산조의 창시자 백락준(1876~1930)이 청양 정산에서 강경으로 이주해 옥녀봉에 살았던 곳이다.

 

[자료제공] 윤석일 강경역사문화연구원장 

[정리]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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