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영화 『저 산 너머』 로케이션 PD 이명훈 헌터
‘일반적인 것들은 보지 않는다’-로케이션 프로듀서
영화를 보노라면 ‘저 멋진 장소는 도대체 어디일까?’ 혹은 ‘저 장소를 찾아낸 사람이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이 돋는다. 개봉 한 달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한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 영화 『저 산 너머』 작업을 마치고, 논산에서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는 로케이션 프로듀서 이명훈 실장을 만났다. ‘로케이션 프로듀서’는 현지촬영장소를 책임지고 섭외하는 직업이다. 너무 힘든 작업이라 일 끝나면 영화 보는 것도 힘이 든다고 말하는 이명훈 실장! 그래도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그를 만나서 영화 세계와 남 다른 시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그의 삶을 엿본다.
로케이션 프로듀서 일은 언제부터?
처음에는 광고 쪽에서 일을 먼저 했습니다. 이 분야의 일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벗어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좀더 근접하는 일을 찾다 보니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로케이션 프로듀서로서 일한 것은 12~13년이 되었고 광고 쪽부터 따진다면 27~28년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기보다는, 경험이라 할까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형과 저를 순천에 있는 외갓집에 보내셨어요. 그런데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차표만 끊어서 우리 손에 과자 몇 봉지와 함께 손에 들려주셨죠. 우리 형제만 기차를 타고 순천까지 갔습니다. 순천역에서 이모들을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일정이었지만, 늘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버지에게 “그것 때문에 자식이 방랑병이 생겼다” 원망하는 말씀 하시곤 하지만요ㅎ~
영화에서 로케이션 프로듀서 일은 언제 시작되나요?
일단 시나리오가 3번 정도 수정이 되고 난 후 본격적으로 로케이션 프로듀서가 투입됩니다. 3고가 나오기 전까지 시나리오 수정작업에 2~3년 지나갑니다. 제가 작업에 합류하고 나서도 시나리오는 물론 계속 바뀝니다.
일단 크랭크 인이 확정되면 큰 틀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작은 것들은 계속 수정이 되지만요. 그래서 처음 본 시나리오가 머리에 각인이 되어 있으면 일의 진행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시나리오는 공부하듯이 프레임별로 나누어서 자세히 봅니다. 처음에는 스토리만 자세히 보고, 다음에는 어느 장소와 맞는지를 생각하면서 보고, 세 번째는 주연배우의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봅니다.
장소 확정되면 끝까지 가나요?
시나리오 공부에 장소 확정은 최소 3개월이 걸립니다. 그동안 전국을 다 다녀봅니다. 혼자서 움직이는 외로운 작업이죠. 지금은 핸드폰이 좋아서 제가 고른 장소를 바로바로 주요 스텝들과 공유합니다.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장소를 확정하는 것이 힘드니까요.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면 하던 작업을 접고 직접 올라가서 의견을 듣고 다시 내려오기도 합니다. 장소를 확정할 때는 감독의 의중이 가장 많이 반영됩니다. 장소헌팅이 끝나면 다시 확정헌팅으로 들어가죠.
언제까지 일하느냐는, 계약에 따라 다릅니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제작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합니다. 영화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장소만 정해주기도 하고, 프로덕션까지 다 참여하기도 합니다. 저 산 너머의 경우는 8개월을 같이 작업했습니다. 크랭크 업까지 같이 작업한 거죠. 『봉오동전투』 의 경우에는 그보다 더 길게 작업했습니다. 아주 초창기부터 같이 작업을 했는데, 16개월 정도 했네요.
『저 산 너머』 작업 때 논산부터 염두에 두었나요?
솔직히 논산은 영화작업하는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논산이 ‘들판이 있다’고는 하지만 보통 ‘들판’이라 하면 김제를 먼저 떠올리게 되거든요. 논산에 연고를 가지고 있는 지인들이 있어서 논산에 직접 들어와서 보니까 ‘연산’이 보이더군요. ‘노성’도 해 지는 풍경이 멋졌구요. 벌곡 ‘검천리’도 나무 하나 때문에 장소에 섭외된 곳이죠.
그렇지만 논산에서 맺은 연은 정말 많습니다. 전화번호가 지금도 3700개 정도 저장되어 있습니다. 다 기억하기 어려워서 전화번호 저장할 때 특정 지역으로 나누어서 그룹화합니다. 연락처도 수시로 업로드를 시켜놓습니다. 작업하면서 큰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는 VIP 초대권을 보내드리기도 합니다.
『저 산 너머』 경우는 합이 좋았어요. 논산시에서도 많이 도와주고, 논산에서 만난 형님들도 참 많이 도와주셨고요. 세트장 같은 경우도 그분들이 농사도 직접 지었으니까요. 다른 자치단체에서는 그렇게 안 하거든요. 완주 같은 경우는 땅만 내줘서 가마터를 우리가 만들어야 했습니다. 촬영할 때 황명선 시장님도 몇 번 찾아와 격려해주고, 관심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이것까지 해봤다 하는 게 있다면요?
여자분들 경우는 스카프 같은 선물을 사 드리기도 합니다. 다른 대안을 구할 수 없으면 어떻게든 성사시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영화 ‘아저씨’를 작업할 당시에는 용문시장의 꽃집이 필요했습니다. 주인공 원빈이 꽃을 사 들고 부인에게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다른 곳에서 먼저 촬영을 하고 꽃집에서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촬영이 계속 지연되면서 꽃집 사장님이 마음이 상하여 “촬영을 못 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낮에 시장 상인분들하고 술 마시는 자리에 소주 6병을 사서 갔습니다. 따라주는 술을 다 마셔가면서 부탁을 해도 안 통하더라구요. 그 당시 제가 그 장소를 바꾸면 100명 이상의 스탭들 일정도 전부 바꿔야 하는 상황이어서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성사가 안 돼 이정봉 감독과 통화하고 다른 곳에서 촬영했습니다.
정말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사람한테 많이 지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영화 한 편이 끝나면 리셋하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작업이 하나 끝나면, 아무것도 안 합니다. 밥 먹고 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리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뭐 하는 거지 싶을 정도로 나만의 굴을 파고 들어갑니다. 이 시간이 나에게 주는 상이죠.
힘든데도 이 직업의 매력은요?
자유스러운 것,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 그게 좋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날 선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라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봐도 모두 예민합니다. 저도 그렇구요. ‘까칠하다’ 표현할 수도 있을 겁니다. 거친 말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도 그런 것들을 모두 이해합니다. 그런 인정이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그 분위기를 저는 좋아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일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습니다. 직접 운전할 수 없게 되면, 사람을 두고서라도 하고 싶습니다.
권하고 싶은 직업은 아니지만 ‘영화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 좋아하면 해봐도 좋다’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시나리오 분석 능력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도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도 하는 말이 “힘든 점이 많지만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말해줍니다.
지금까지 작업한 영화 편수가 궁금해요, 본인만의 장점도요^
일 년에 많이 하면 3편 정도를 작업하는데, 작업한 영화의 리스트는 가지고 있지만 세어 보지는 않아서 정확히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아저씨’입니다. 감독님 스탭들과도 워낙 친하게 지내면서 작업한 영화이고 1년 10개월 정도를 같이 했으니까요. 영화 완성하고도 우리끼리 애쓴 것들이 보이는 영화고, 성취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나의 장점이라면 시나리오를 읽을 때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그 느낌에 맞게 움직이죠.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다양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셨는데, 피아노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제가 어떤 것을 하려 할 때 항상 제가 선택한 것을 할 수 있게끔 해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 거 같아요. 광고 일 할 때도 그랬고 영화 하는 지금도 감독님들이 ‘일반적인 것들을 보지 않는다’는 걸 제 장점으로 꼽아주더군요.
저는 아직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데, 집에 가면 어머니가 있어서 제일 좋죠. 어머니가 연세도 드셨고 제가 밖에서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요즘 집밥이 제 입맛에 다 잘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집밥 먹을 수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편안해요. 그러다 잔소리 시작될 즘, 다시 일하러 나옵니다(웃음).
[대담] 홍미경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