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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노트] 연산면 신암리 이화자 님 "욕심을 버리고 재미있게 삽시다!"
기사입력  2020/04/08 [14:49]   놀뫼신문

[인생노트] 연산면 신암리 이화자(李花子, 76세) 할머니

욕심을 버리고 재미있게 삽시다!

 

연산사거리에서 남쪽 방면 양촌으로 가는 길목에 평범한 농촌마을인 신암리가 있다. 봄비가 내리는 3월 어느 날 그곳 신암리에 사시는 이화자 할머니를 댁으로 찾아뵈었다. 마음씨 좋은 인상을 가지신 할머니가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할머니는 그간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주셨다.


 

❏ 가야곡에서 연산으로 시집오다

 

할머니의 고향은 이곳 연산의 이웃 마을인 가야곡이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셨다. 할머니는 7남매 중 제일 맏이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여덟 살 때 새어머니가 들어오셨다. 그래서 동생들과 나이 차가 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스물여섯에 시집을 갈 때까지 많은 동생들을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남편은 중매로 만났다. 시집은 역시 이곳 연산에서 농사를 짓는 집이었고, 남편은 7남매 중 넷째였다. 당시 연산은 쇠전(우시장)이 설 정도로 큰 장이 서는 곳이었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큰 대처로 시집을 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신암리는 그곳 연산 장터까지 잠깐 걸어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이다.

시집을 오자 시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할머니가 일을 잘해서란다. 할머니는 옛날 생각을 하면 일한 기억 밖에는 없을 정도로 하루종일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할머니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자리에 들 때까지 일만 했어요. 그때 한창 다랑이 논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을 할 때였어요. 그래서 남의 집 일손을 빌릴 때였어요. 그 많은 일꾼들 아침밥 해먹이고 돌아서면 새참 해 나르고, 또 점심 해먹이고 돌아서면 새참 해 나르고, 그리고 저녁까지 해 먹여야 끝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그때는 전부 삽으로 흙을 파서 땅떼기를 하려니 얼마나 일손이 많이 들었겠냐고, 지금 같으면 굴삭기로 그저 며칠이면 다 할 일을 그 많은 장정들이 달라붙어 한 철을 그렇게 보냈다고 할머니는 그 당시를 회고한다.

 

 

❏ 남편을 갑작스럽게 먼저 보내다

 

남편은 젊어서부터 가끔 폭주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술을 안 마시는데, 어쩌다 한 번 마셨다 하면 며칠이고 끝도 없이 계속 마셔서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힘들게 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얘기를 직접 들어본다.

“그렇게 마셔대니 버텨낼 재간이 있었겠어요? 하여간 그래서 그랬는가 내 나이 오십 하나, 그 양반 나이 오십 넷에 서둘러 갔어요.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떠나버리듯이 돌아가셨지요. 애들 한창 가르칠 때인데, 나 혼자 어떡하라고, 얼마나 밉던지 몰라요.”

할머니는 남편과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는데, 큰 아들이 군대를 막 제대했고, 작은 아들은 대학에 다니며 군에 들어가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밑으로 딸 둘은 모두 학생이었을 때니 그것들을 어떻게 혼자 가르치나 너무 막막했었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돌아가시기 일 년 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남편이 죽자 또 일 년 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시댁 어른들이 줄줄이 돌아가시는 소위 줄초상을 치르느라 많이 힘들었다고 할머니는 당시를 회고한다.

 

 

❏ 자식들 잘사는 것 보며 살다

 

할머니는 현재 큰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큰아들 최성중씨는 가까운 계룡시에서 건축과 설비 사업을 조그맣게 하고 있다고 한다. 작은 아들 최성준씨는 계룡시에 살며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둘 다 가까이서 할머니 당신을 살피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자주 들러 반찬이며 이것저것 해 나르는 며느리가 무척 고맙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딸들도 역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큰딸은 같은 논산인 가야곡에 살고 있고, 작은 딸은 세종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모두 가까운 곳에 있어 항상 든든하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손주는 외손주만 셋 있는데, 큰 외손주는 이미 대학도 졸업해서 MBC방송국에 취직하여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들 자리잡고 제 할 일 하면서 사는 자식들을 보면 그래도 힘들었지만 나름 열심히 산 보람이 있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그러면서 애들을 키우면서 가슴 철렁 내려앉는 아주 어려운 고비도 있었다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막내딸이 너댓살 정도 되었을 때였어요. 우리 아이들은 모두 살성이 좋지 못해서 부스럼이 많이 났지요, 한 번 생기면 영 안 없어지고 부스럼이 깊어지기만 하는 거에요. 어린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겠어요. 그것을 본 이웃이 부스럼에 좋은 약이라며 가루약을 물에 개서 발라보라고 좀 주었어요. 그런데 막내딸이 안 보는 사이에 그만 그 약을 먹었지 뭡니까. 배가 아프다고 막 우는데, 그 아이를 데리고 하루에 두 번이나 논산에 있는 병원에를 다녀왔지요. 그래도 낫지 않고 계속 울어대서 대전에 있는 성모병원에 안고 가서 결국 입원을 했답니다. 그러고 나서야 진정되었어요.”

할머니는 우는 아이를 안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말한다.

 

❏ 삼십 년 가까이 장에 나가시다

 

할머니는 농사지은 잡곡과 채소를 팔러 일주일에 세 번 장에  나가신다. 계룡시 금요장, 서대전 구봉마을과 원앙마을에 서는 장이 바로 그곳이다.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아이들 데리고 살아보려고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 가르치고 살림에 보태려고 시작한 것이 이제는 재미삼아 그리고 운동삼아 나가고 있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주로 집에서 농사지은 콩, 팥 등 잡곡과 밭에서 키운 채소를 갖다 판다고 한다.

“그걸 팔아서 내 용돈도 쓰고, 병원에도 가고 그럽니다. 아직 이 나이 되도록 아이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사니 좋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활기차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장에 나가면 친구들 만나니 재미있어서 좋지요.”

할머니는 장에 나가면 단지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또 보고, 친구들 만나 같이 점심도 먹고, 하루를 너무 재미있게 보낸다고 한다. 오히려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보내는 시간이 더 즐겁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다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지요. 이거 팔아서 얼마나 남겠냐며 주는 대로 받아가는 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밑져가면서 저울눈이 넘어가도록 주는데도 더 가져가려는 고약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주다가도 도로 다 뺏고 싶지요. 정말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가서 일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고 하루하루 삶의 재미를 위해서도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도 집에 있으면 어머니 병 생긴다고 건강을 위해 장에 나가시되 살살 하시라고 하면서 곁에서 많이 도와준다고 한다.

요즘 들어서는 예전에 비해 허리가 아파서 앞으로 2-3년 정도만 더 하고 장에 나가는 것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머니는 말하며, 생활을 위해 시작한 장사가 이제는 건강과 재미를 위해서 하니 너무 행복하단다.

 

❏ 지금은 호강하며 사신다고....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어요. 시골에 와서 이 정도 살고 있으면 호강하고 사는 게지요. 요즘처럼 맘이 편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좋아요. 앞으로 몸이나 아프지 말고 살다 가는 게 소원이지요. 살면서 욕심부려봤자 하나라도 가져 갈 수 있나요? 나누며 재미있게 사는 거지요”

오직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식들 잘 사는 것과 당신의 몸 아프지 말고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할머니. 요새는 한글학교에서 공부도 시작했는데, 사실 공부보다도 함께 만나서 떠들고 웃고  노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고 말하는 할머니는 정말 무척 긍정적이다. 참고로 할머니는 이 마을 열다섯 명이 배우는 한글학교의 반장님이기도 하다.

 


 

[후기]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까만 개와 하얀 개 두 마리가 대문에서 꼬리를 흔든다. 큰아들이 데려온 개들인데, 막상 키우기는 당신께서 키우신단다. 어딜 나가려면 밥 챙겨 줘야하고 여간 성가신 게 아니라며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표정은 전혀 성가신 표정이 아니시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건강하게 사시는 할머니가 무척 좋아 보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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