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섬과 동시에, 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안가기 등으로 일본과 정면 대립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이나 반일감정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항일망국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은 일본과 맞설 때가 아니라면서 “나라를 살리기 위해 냉정하게 자존심을 접고 일본과 협상에 임하라”고 한다.
100여 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실현가능성에 손사래를 치면서 ‘의병이 무슨 나라를 구하겠나’, ‘만세운동 한다고 우리가 독립할 수 있을라고’, ‘언제 군대를 만들어 일본군과 맞서나’ 등 비관적 목소리가 대세였다. 그때 선조들이 맨주먹으로 일제에 맞서던 것은, 성공 가능성이 높고 부가 있다는 판단에서가 아니었다.
우리 선조들이 당장 코 앞의 성패 여부만 따졌더라면 분연히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대로 주저앉아 있기만 했더라면 조선의 독립도, 현대의 문명과 민주주의도, 진보적인 것은 어떤 것도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작은 노력이 연승을 거두면서 쾌도난마일 수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어떤 상황이 전개되겠는가? 하나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후손들에게는 무거운 짐만 대물림해 주는 악화일로일 것이다.
경제전쟁으로 불리는 일본과의 전쟁의 발단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올 것이 온 것이다. 피하려고 한 대서 피해지는 사안이 아니다. 항일망국론자들의 주장처럼, 국격이고 뭐고 다 버린 채 바짝 엎드려 저자세로 일관해간다면 당장의 흔들림은 최소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종국은 더 비참한 예속이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처럼 어느날 갑작스레 선전 포고를 해왔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경제대국이니까 무릎부터 꿇고 볼 것인가? 전화위복으로 알고 극일의 길을 택할 것인가? 100여 년 전과 비교해볼 때, 지금 우리는 상당히 우월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당장 손해도 보겠지만, 그 정도 감수하지 않고서 어찌 후손들 얼굴을 대할 수 있겠는가?
▲ 사진제공 화앤담픽처스 '미스터션샤인' 한 장면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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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다시는 안 진다...언젠간 넘을 산
우리는 충분히 일본을 이겨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 명단 국가에서 제외하는 추가 무역보복 조치를 감행하기로 한 것에 대하여 임전무퇴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으로 깊이 유감을 표한다”면서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갈 것”이라며 ‘맞대응’도 시사했다.
“일본의 조치로 인해 우리 경제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려움이 더해졌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올해 특별히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미래 100년을 다짐했다”며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던 질서는 과거의 유물일 뿐,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다”라고 천명하였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민주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경제도 비할 바 없이 성장했다”며 “어떠한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할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당장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전에 굴복하면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된다”며 “지금의 도전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새로운 경제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일본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7월23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국회정론관에서 일본 경제보복조치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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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3일 논산시의회는 제205회 임시회에서 의원 만장일치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규탄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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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5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충남시장군수협의회와 제9회 지방정부회의에서 일본 경제보복조치 철회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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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6일 계룡시의회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정부가 취한 반도체 부품 및 소재의 수출규제에 대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보복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즉각 철회하라는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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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30일 계룡시여성단체협의회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자 민주시민으로서 일본 아베정권의 반인권적, 비도덕적, 반평화적 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한다”고 성명을 냈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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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6일 논산시여성단체협의회는 여성단체회원 및 YWCA 단체 회원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일본 제품 불매운동 거리 캠페인 행사를 가졌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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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7일 논산시이통장연합회는 논산시청 회의실에서 개최된 이통장연합회 월례회의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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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7일 한농연 충남도연합회는 청양 백세공원에서 열린 ‘제16회 충청남도 농업경영인대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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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9일 충청남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는 제91차 정례회에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규탄 결의문’을 채택했다. © 논산계룡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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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조치 단호하게 맞설 것
협력도시와 문화교류 취소 및 글로벌 연수 중단
논산시는 지난 5일 황명선 시장 주재로 국장 및 실과소장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따른 상황진단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가졌다.
황명선 논산시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세계자유무역보호질서에 반하는 행태로 강력하게 맞설 필요가 있다”며 “시민사회와 함께 ‘신(新)물산장려운동’을 통해 한마음 한뜻으로 단호하고 차분하게 위기를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관내 471개 제조업체 중 일본과 수출·수입 관계가 이뤄지는 곳은 18개소이며, 이 중 3개 업체가 수입품목 대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기업 자체 재고파악 및 물량 사전 확보와 함께 행복도시국장을 중심으로 한 일본무역규제 대책 상황실을 긴급 구성·운영해 기업의 애로사항 청취 및 중소기업경영안정자금 지원책을 강구중이다. 나아가 중장기적인 수출·입 다변화 시스템을 구축해 근본적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논산시는 8월 예정되어 있던 일본 우호협력도시와의 문화교류 계획을 전면 취소한 것은 물론 공무원 파견·인사교류와 매년 관내 중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일본 오사카~교토~나라 문화탐방 글로벌 해외연수를 무기한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히며,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강력 대응하고 있다. 이런 의지는 민관 구분 없이 표출되고 확산 일로이다.
거대한 감옥, 식민지
100여 년 전 일본과 맞서 싸웠던 역사의 흔적
민족의 수난의 역사가 있는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가 위치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는 조선시대 북쪽 의주로 가는 큰 길인 의주로가 위치한 곳으로, 사대문 안과 밖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 주변에 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였던 영은문과 모화관(현 독립관)이 있었고, 1897년 영은문이 없어진 자리 앞에 독립문이 세워졌다.
일제는 이곳 현저동에 1908년 ‘경성감옥’이란 이름의 대규모의 근대 감옥을 설치하여 감시와 통제를 위한 식민지 지배 도구로 이용하였다. 경성감옥 이외에도 전국의 8개 주요 도시에 본 감옥과 그 산하 8개 도시에 분 감옥을 설치하여 전국에 16개소의 감옥을 설치·운영하였다. 1910년 강제합병 직후 21개소, 1920년 이후에는 평균 30여 개소 내외의 감옥을 설치·운영하였다. 이를 통해 일제는 식민지 한국 전역을 거대한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고 폭압적인 식민 지배를 자행하였다.
개소 초기 경성감옥의 수감 인원은 500여 명으로 일제의 침략에 무력으로 맞섰던 의병들이 주로 수감되었다. 1910년 강제합방 이후에는 의열투쟁과 비밀 결사 요인들이 주로 수감되었다. 1919년에는 3·1독립만세 운동으로 수감자가 급격히 늘어나 민족 대표 33인을 비롯하여 3천여 명에 육박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다.
-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 개소
- 1912년 9월 3일 서대문감옥으로 변경
- 1923년 5월 5일 서대문형무소로 변경
- 1945년 11월 21일 서울형무소로 변경
- 1961년 12월 23일 서울교도소로 변경
- 1967년 7월 7일 서울구치소로 변경
- 1987년 11월 15일 서울구치소 의왕시 이전
-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1998년 개관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근현대 우리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하였던 서대문형무소를 보존·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해방으로 풀려나는 듯했으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대로 굴러갔다. 일제 청산 없이 지속된 독재정권기에는 민주화를 이루고자 맨 주먹으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운동가들이 다시 투옥되면서 갖은 옥고와 희생을 당해온 현장이었다.
어디 서울만 그러했는가? 동학과 그 이후 점철된 삼일혁명, 독립투사들의 암약이 줄기찬 논산땅 황산벌은 어느 곳 못지않은 형극(荊棘)의 길이었다. 시대는 어언 100년이 흘러오면서 육군훈련소, 3군본부 등 논산 계룡은 명실상부 “국방특별시”가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선샤인랜드라는 근대 문화 타운이 들어섰다. 이 모든 게 우연인가? 박시동 화백이 대한민국에서 삼일운동 특강 장소로 찾은 곳이 다름아닌 선샤인랜드다. 불의라면 참지 못하고 반역의 땅 낙인을 감수해온 논산계룡은 대한민국을 향하여 오늘 다시 묻는다. “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