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참사때 안산시 고잔동 일대는 텅 비어 있었다. 단원고 부모들이 실종된 아이들 찾으러 팽목항으로 떠난 뒤, 집에 남은 사람들은 노인과 아이들뿐이었다. 당시 수개월 동안 이들 가정에 도시락을 제공한 업체는 지역의 사회적 기업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국가의 부를 증대시켜줄 이익 집단 기업이 있어야 한다. 선공후사(先公後私), 사익보다 공익 우선인 정부는 정부대로 할 역할이 정해져 있다. 이 중간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세월호는 정부가 상당 부분을 책임져야 했지만 손을 놔버렸다. 이러한 경우 사회 구성원들은 정부만 원망하고 있을 것인가? 이런 극단적 예외 말고라도, 일반 상황에서 사회적 이익을 대변하고 대처해줄 사회적 기업이 필요하다. 정부, 기업이란 2각 구도에서 사회 봉사나 기여 같은 역할을 대기업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분명 한계치가 있다. 개에게 도둑 막는 일과 쥐 잡는 일을 동시에 요구할 수 없듯이....
사회적 기업 중 선두주자가 협동조합이고, 그 중 대표급은 단연 농업협동조합이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키워온 농협은 방방곡곡 뿌리내리지 않은 곳이 없다. 이제 농협이라 하면, 협동조합이라는 순박한 태생과 정체감을 대입하기에 거대한 공룡 그 자체이다.
논산 계룡 지역은 뚜렷한 도농 복합도시이다. 전체 시민의 30%가 농업에 종사하며, 농업을 빼고서는 지역 경제를 논할 수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은 금융 분야를 넘어 사회 정치 경제 일반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우산으로서, 지역사회의 수장급 위치이다. 농협의 재무적 이익보다 사회적 이익을 우선하는 ‘임팩트 투자’는 지역의 경제 발전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농협은 사회적 기여의 일환으로 각종 영농교육, 장학금지원, 봉사활동 등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농협에 대한 고마움보다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질 때도 없잖다. 융자금 회수 과정에서는 극에 달한다. 경매 잘 넘기는 직원에게 고과점수가 상당 반영된다는 풍문도 인구에 회자되는 실정이다.
얼마전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인 대전 인근으로 낙향한 고교 선배와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항상 넉넉하고 후배들 잘 챙겨주었던 선배인지라 성심 성의껏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야위었고 말수도 부쩍 줄었다. 유망 중소기업 대표로 정부 표창도 여럿 받고 잘 나가던 벤처기업 스타 선배가 어느 날 백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술잔이 서너 순배 돌고서야 풀 죽어 있던 선배가 고개를 들더니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고등학교 선생님부터 학교 앞 중국집 얘기까지 갖가지 추억 꽃을 피우다가,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면서 짧막한 충고 하나를 던졌다. “후배님, 세상은 영원한 후원자도, 영원한 적도 없어요! 내가 사업이 어려워지니까 제일 먼저 등 돌리는 곳이 어딘 줄 알아? 은행하고 기생집이더라구! 그러니 우리 후배님, 평상시에 잘 해놓으셔!”
그날 선배와의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 사무실 나가려는데, 우연찮게 직원의 전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농협은행 신도안지점인데요, 앞으로 신문 넣지 마세요.” 당황한 여직원이 답하였다. “아~ 그거요? 그 지점은 신문요금이 부과되는 경우가 아니구요, 퇴직하신 ㅇㅇㅇ 씨 있잖아요. 그분이 넣으라고 해서..” 그러자 상대방은 얘기도 끝나기 전 자르듯이 짤라 말했다. “아무튼 요금 내든 말든 상관없으니, 넣지 마세요.”
우리 회사는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누구 붙잡고서 신문 봐달라 강청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분이 내 손을 꼭 잡으며 “신문을 꼭 2부씩 넣어 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신문을 선물한다는 것은 어쩌면 연서(戀書) 배달과도 엇비슷하다.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함께 키워온 내 지역 소식을 대체 누가 전해주는가? TV나 4대 일간지 아무리 펴봐도 내 고향 소식이 어디에 있으며, 지방판에 찔끔 나온다 해도 거기에 향토애 같은 게 과연 얼마나 묻어 있는가? 개명천지에 지구끝 일은 알고, 지척지간 옆 동네 일은 당체 모르는 등하불명(燈下不明)의 시대를 자초하자는 얘기인가? 지역신문 동네신문을 키우고, 그런 취지에서 신문을 선물까지 하는 일은 어느 특정 신문사를 키워서 그 회사에 이익을 발생시키는 기업 논리가 아니다. 아니, 이런 영역이야말로 사회적 기업, 특히 농협 같은 대표 협동조합에서 앞장서 주어야만 하는 본연의 업무이다. 신토불이, 농심은 동네사랑방인 지역신문으로 모아져야만 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소식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충정에서 신문을 넣어달라고 한 그날은, 햇볕 쨍하던 맑은 날이었다. 농협은행은 맑은 날 필요 없다는 우산 굳이 빌려주고, 비오는 날기다렸다는듯 빌려준 우산 뺏어가는, 참으로 희한한 행태가 가끔 목도되곤 한다. 천기를 따르는 농심과 궁합이 맞는 것은 역천(逆天)이 아니라 순천(順天)일진대, 인심 거스르는 해프닝은 특정직원 한둘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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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주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