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친 여름
강표성
비의 숲에 잠겨 있는 오후, 그 속을 질주하는 건 자동차만이 아니다. 내 마음은 우산도 없이 거리로 나선다. 젖은 고향 길을 서성인다.
어린 시절엔 비가 많이 왔다. 하루에 두어 번 대처로 나가는 완행버스가 있을 뿐, 비 오는 날에나 기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골이었다. 하늘은 가깝고 찻길은 먼 오지, 그곳에선 우산을 식구 수대로 준비해놓고 사는 건 사치였다. 비가 오면 어른들은 도롱이를 쓰고 논배미에 물 보러 나가고, 아이들은 헌 옷이나 키를 뒤집어쓰고 돌아다녔다.
우산이랬자 마분지 비슷한 종이에 콩기름을 먹여서 비를 겨우 가린 지우산이다. 논낱 같은 비에는 누르딩딩한 종이우산은 지레 겁을 먹는다. 이런 땐 얌전히 비켜서서 비가 긋기를 기다려야 한다. 비닐우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투박한 나무 우산살 사이로 얇은 비닐을 입혔으니, 가랑비나 여우비를 가릴 정도였다. 바람만 건듯 불어도 찢어지고 뒤집혀지니 말이 우산이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아이들 손에 들어갔다 하면 금방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비만 오면 어머니의 잔소리가 길어지곤 했다. 우산을 찢어오거나 해찰하다가 잊어버리기 일쑤니, 우산대신 아버지 헌 옷이 내 몫이어도 할 말이 없었다. 운 좋은 날엔 우산 쓴 동무에게 빌붙어서 머리나 안 젖으면 다행인 등교 길이었다.
하교 길, 흙탕물로 뒤집어진 도랑이나 냇가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족하다. 고무신을 질질 끌며 도랑물을 헤집고 다니면 치마 가랑이가 흠뻑 젖는다. 이 때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그날 날궂이는 제 격이다. 한여름의 악동들은 다리 밑이나 처마 밑으로 달려가지만, 짓궂은 소낙비에게 붙잡히고 만다. 땅 비린내를 맡으면서 잠시 바라보던 수직의 빗줄기들, 머리에서부터 고무신까지 줄줄 흘러내리던 또 하나의 빗줄기들, 눈만 반짝이는 아이들은 물에 빠진 생쥐 같은 서로를 바라보고 씨익 웃는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왕 젖은 몸이다. 눈썹 사이로, 목줄기로, 다리 사이로, 내려오는 비는 팔분음표처럼 즐겁다. 함성을 지르며 내달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술이 파란해지고, 그런 와중에도 주머니를 뒤져 풋 복숭아나 으깨진 살구 몇 알을 나눠 먹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와선 물기를 대충 닦는 둥 마는 둥 부엌으로 간다. 솥뚜껑을 밀치면 감자 몇 알이 졸고 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감자알을 먹어치우고 미지근한 방에 누우면 졸음이 솔솔~~~. 세상 걱정 없는 아이는 단잠에 빠져든다. 밖에서는 비가 설익은 땡감을 건들다가 호박잎을 두둑 밟고 가고.
비가 저녁까지 이어지면 엄마의 당목 행주치마가 쪽마루를 차지한다. 큰 함지박을 찾아서 밀가루를 치댄다. 칼국수를 몇 번이나 끓여내야만 지루한 장마가 끝나는 것일까. 어쩌다 운이 좋은 날에는 단팥 끓이는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팥의 단내가 솔솔 풍기는 저녁이면 마음부터 불러온다. 우리 고향 말로는 '낭화'라 불리는 팥 칼국수는 여름철의 별미다. 걸쭉한 팥물에 칼국수를 썰어 넣고 단 맛 나는 당원 몇 알 뿌리면, 눅눅한 마음에도 단 맛이 든다. 세상 모든 것이 달아 보이는 저녁이다. 빗소리 반찬 삼아 후후 불어먹는 낭화 맛은 내 어린 날의 기념사진과도 같다.
‘우산’이란 동요가 생각난다. 노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이런 가사 중에서 찢어진 우산으로 넘어갈 때쯤이면 나도 몰래 웃는다. 그 찢어진 우산이 내 것만 같다. 그 속에 꼬맹이 모습이 보인다. 한쪽 우산살이 꺾여 있다. 들이치는 비에 가방이 비에 젖을까봐 우산을 자꾸 뒤로 넘기면서 열심히 걸어가는 꼬마다. 어린 날의 내 모습이다.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한쪽 어깨가 젖어있다. 열심히 우산을 갈아치웠으나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누군들, 세월의 빗발을 온전히 피할 순 있을까.
한번쯤 비와 달리기를 하고 싶다. 날비를 느껴본 지가 언제인가. 예전처럼 비에 쫒기다가 비를 쫒으며 온 몸으로 내다르고 싶다. 나무들이 외치는 소리와 풀들이 깔깔거리는 소리에 잠겨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그들과 한 몸이 되어 젖어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만 그 여름날을 훔쳐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