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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신부사랑나누기] 부활! 죽어야 산다.
성공회 복대동성당
기사입력  2016/03/30 [11:10]   놀뫼신문


3월 27일은 2016년 부활절입니다.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이들이 함께 예수님과 우리들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부활, 다시 삶의 전제조건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죽음입니다. 먼저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부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죽어야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버려야 새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떠나야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비워야 새것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죽지 않고,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고, 비우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사는 겁니다. 투덜거리면서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읽는 성서를 한 마디로 얘기하면 죽으라는 거죠. 떠나라는 겁니다. 부활은 그저 미끼입니다. 출애굽이 바로 그거잖습니까? 이집트 종살이를 떠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가나안은 미끼였구요, 종살이를 떠나라는데 방점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을 말하는 겁니다. 이집트는 비록 종살이는 하지만 끼니 걱정 안 하고 잠자리는 보장된 곳입니다. 계속 투덜거리면서 종살이하며 살든가, 그게 아니라면 떠나라는 겁니다.

떠나서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안전하게 거기서 살 걸.’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까지 가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40년을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런 곳이 있기나 한거야?’ 의심도 생기고 도중에 서로 싸우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지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굶지는 않았습니다. 배고파서 허기지면 어디서 먹을 게 생기고, 목말라서 갈증이 날 때쯤 되면 샘물을 만납니다. 길을 잃을만하면 길이 생기고, 그러면서 40년을 헤매고 다닌 겁니다. 여러분, 그게 더 두려운 겁니다. 결론이 빨리 안 난다는 것. ‘이러다 마는 거 아냐?’ 한 치 앞도 알지 못함. 그게 두려움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믿음이 생깁니다. 두렵지 않은데 어떻게 믿음이 생길 수 있습니까? 두렵지 않은 가운데 믿음이 생겼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쓸데없는 확신이고 편견이죠. 그걸로 남을 재단이나 하는데 쓰겠죠. 죽이는데 쓰겠죠. 그걸 뭐에 쓰겠어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떠나고 싶어도 무서워서 못 떠납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 어떤 것 하나 보장 안 된 곳으로 가야할 때 생기는 그 두려움. 그런 가운데 생기는 믿음이 정말 믿음입니다. 그 믿음에 대해서 당연히 의심도 가겠고,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연히 갈등도 생깁니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결단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다른 말로 회개입니다. 우리가 매일 회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매 순간 결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그 결단은 내 수족을 스스로 자르는 것에 비견될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쓰던 물건 하나 내다버리기도 힘든데, 하물며 정든 곳을 매일매일 떠나라고요? 익숙한 내 자리를 바꾸라고요? 손때 묻은 편안한 것을 버리라고요?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마음을 비우라고요? ‘에이, 그냥 껴안고 살래.’ 그렇게 해서는 부활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역시 따로 움직입니다. 결국 결단을 미루죠. 천년만년 살 것처럼 미룹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빨리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내 삶에 끼어들어서 종종 간섭을 하십니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내 일상을 단번에 깨뜨리시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는 병으로, 누구에게는 사업실패로, 누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떠나보냄으로, 그런데 우리는 그래도 잘 모릅니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도 정신 못 차립니다. 기브스 풀기가 무섭게 옛날로 돌아갑니다. 누구는 그것도 못 참고 목발 짚고 돌아갑니다. 가족 장례 치르자마자 바로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내 삶에 있어서의 고통과 어려움, 당할 당시에는 그저 괴롭기만 했는데, 지나고 나면 ‘아, 그게 하느님이 주시는 싸인이었구나. 내가 턴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의 은총이었는데, 지나고 나서야 어, 그게 은총이었네.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은총이란 말은 나중에 깨달을 때 나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진 삶일수록 주님이 날 특별히 사랑하시는구나. 삶을 놓을 때는 모두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그 좋은 하느님나라, 죽어서 가지 말고, 제발 살아서 가라는 겁니다. 그게 부활입니다. 떠나라, 버려라. 비워라.’ 그게 죽는 겁니다. 살면서 제일 힘든 겁니다. 움켜쥠은 본능, 곧 하느님을 멀리하는 원죄입니다. 원죄, 본래 그렇게 생겨 먹은 겁니다.

호스피스 교육 받을 때 수료하기 직전에 제일 마지막 수업이 유서쓰기입니다. 그리고 관 속에 들어가서 한 5분간 누워있는 겁니다. 기분이 묘합니다. 우는 사람도 있고,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미리 경험해보는 겁니다. 떠나고 버리는 것을 연습하는 겁니다. 가족이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고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사랑하는 내 가족 더 사랑해야지. 앞으로 봉사하며 살아야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해야지. 거의 공통된 반응입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옛날처럼 되지만요.

매년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게 뭔 의미가 있어요? 제헌절 날, 우리 헌법이 드디어 만들어졌구나. 그래서 막 기뻐요? 광복절 날 우리가 드디어 일본 압제에서 해방되었구나. 그래서 가슴이 막 벅찹니까? 2천년 전 예수님이 죽음 권세를 물리치고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셨구나. 그래서 눈물이 나도록 기쁘십니까? 기쁘신 분이 있다면 죄송스럽지만 저는 그것에 대해서는 별로 감흥이 없습니다.

제가 이기적인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내 부활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내가 다시 새롭게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온통 그것만을 고민하면서 저는 삽니다. 그것을 준비하며 삽니다.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래도 저는 저의 부활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부활하셨습니까? 제가 축하해도 되는 겁니까?

부활절은 서로 그 부활을 축하해주고 또 축하해줄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도해주는 날입니다. 꼭 부활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부활절에 부활 못 하셨으면 내일 하셔도 됩니다. 내일 바쁘시면 모레 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날은 도둑놈처럼 옵니다. 속히 결단을 내리시고 여러분 모두 꼭 부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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