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논산시청에서 사회복지업무를 담당하던 새내기 공무원이 업무과중에 시달리다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일어나서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한 일이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쓸 때는 아직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주변 지인이나 가족들은 고인이 평소 많은 업무량에 힘들어했었다는 말로 입을 모으고 있던 상황이었다.
원인과 결과가 어찌 되었든 간에 제일 안타까운 건 가족들도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누구하나 그의 마음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더라는 것이다.
물론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 모두가 매일매일 보는 얼굴들이어서 일상적인 수고로움의 토닥임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쉼 없이 돌아가는 일터의 쳇바퀴 속에서 며칠째 이어지는 두통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이 하는 말이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니 며칠 정도 일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좋겠단다.
‘누가 그걸 모르나. 일이 바쁜데 어떻게 쉬나요?’ 속으로만 되 내 인다.
이런저런 일들로 몇 주간 스트레스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조직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더욱이 일상적 스트레스가 아니라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았을 때, 자신을 오해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등 마음의 상처는 깊고도 심각한 것이다.
당한 사람은 입술을 깨물면서 분노에 떨기도 하고,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을 터이다. 이런 고뇌가 얼마나 그들의 건강을 해치는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격노하면 곧바로 몸 안의 피가 모두 새까맣게 탁해진다고 한다.
힘들다. 사는 게 다 힘들다. 어디 힘들지 않은 사람 있겠는가? 어디 괴롭지 않은 사람 있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진정하며 안정을 찾고 평정을 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괴로움을 오래 끌지 말자. 그래봤자 자기만 손해다. 그리고 남의 괴로움을 못 본 척 하지 말자.
참다운 인간관계는 괴로워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아는 따스한 인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성공’이라는 두 글자 앞에 자신의 모습이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 있기를 원할 것이다.
성공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본은 위로하고 격려하며 공감하는 것이다.
동정과 공감은 엄연히 다르다.
동정은 은근히 얕보는 듯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공감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격려하는 것이다. 격려를 주고받는 관계인가 아닌가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나도 기쁘고 너도 기쁘게 하는 게 바로 서로 격려하는 관계이다. 당신을 진정으로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지 않다면 당신을 격려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당신 주위에 있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성공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무심하게 대하거나 감사할 줄 모른다.
버리고 나서 잃어버리고 나서야 ‘음, 뭔가 허전한데....’하고 느끼지만, 누구를 소홀하게 대해서 그런지 깨닫지 못한다.
‘남의 비판을 받고 싶지 않다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 링컨의 좌우명이다.
남북전쟁 때 남과 북의 치열한 대치 등으로 주위 사람들이 남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욕하면 링컨은 이렇게 타일렀다.
“그들을 욕하지 마세요. 만약 우리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우리도 역시 그들과 똑같이 했을 것이오.”
링컨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우선 자신에게는 어떤 문제가 없는지, 내가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결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더 많이 해줬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이해했고 또 지배했던 것이다. 격려를 바탕으로 큰 어우러짐을 만든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분한 마음을 삭히지 못할 때가 많고 울화가 치밀 때도 많다.
자신도 모르게 남을 비난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남을 욕하는 건 바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와 관용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래전에 끝난 텔레비전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난다.
“김 과장 등 호칭이 아닌 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네가 정말 아껴야 될 사람들이야. 평생을 같이 갈 사람들이야. 그들은 너를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이거든.”
주위에 내 이름을 불러주며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그들과는 어떤 모양새의 어울림으로 내가 비춰지고 있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