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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집] 사람을 찾습니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기사입력  2025/04/21 [10:42]   놀뫼신문

  

봄이 되니 가는 곳마다 꽃으로 덮여 있다. 봄이 되니 꽃이 피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 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겨울이 없고, 꽃 피지 않는 봄이 없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기 마련이고 봄이 되면 겨울 동안 움츠렸던 꽃이 피기 마련이다. 겨울만 계속된다면 추워서 살 수 없고, 봄만 계속된다면 저 꽃들도 지겨우리라. 그래서 창조주는 우리에게 겨울을 견디어 봄을 맞이하게 하고, 혹독한 겨울을 통하여 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한다.

봄인데도 며칠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봄비치고는 많은 양이어서 가뭄에 생기를 얻었지만 바람은 겨울처럼 차가웠다. 세상은 야속하게도 좋은 일만 줄줄이 이어지지도 않고, 다행히 나쁜 일이 떼로 몰려들지도 않는다. 오락가락, 잔잔했다가 파도가 밀려오고, 파도 끝에 태양이 눈부시게 빛난다. 

 

■ 숙주와 기생충

 

내가 가까이 지내는 시인은 <아버지를 찾습니다>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시에서 아버지는 이발관에 갔다가 집을 찾지 못한다. 집 주소나 전화번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 흰 바지저고리에 흰 고무신을 신은 아버지는 자식들이 백방으로 찾아도 보름째 소식이 없다. 시골이 더 좋다는 아버지를 억지로 도시로 모시고 온 것, 술보다 더 좋은 것을 마련해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들은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누구의 잘못일까. 도시보다 시골과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잘못인가, 그런 아버지를 억지로 도시에 살게 한 아들이 잘못인가. 또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잘못인가, 술 대신으로 좋은 것을 마련해 드리지 못한 아들이 잘못인가.

그러나 잘못의 책임을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이 더 크든지 두 사람 모두가 불행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두 사람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서로 상대를 탓하며 더 깊은 늪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다. 잘못된 만남이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이용하여 내 이익을 챙기려는 계략이 깔린 만남은 흉악한 음모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있다. 힘이 없는 여우가 호랑이의 권세를 빌려 거들먹거린다는 말이다. 호랑이 옆에는 늘 여우들이 들끓는다. 여우는 호랑이를 등에 업고 호랑이 행세를 하기 위해서다. 이 여우는 숙주(宿主)에 붙어 사는 기생충과 같다. 숙주는 기생충에게 많은 것을 빼앗기지만 인식하지 못한다. 기생하는 것들은 모두 달콤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이로운 존재로 착각하여 떼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기생충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은 잽싸게 새로운 숙주를 찾아 빨대를 꽂는다. 

 

■ 비누 같은 사람 어디 없을까

 

비누 같은 사람을 찾고 싶다. 그런 사람과 손잡고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가고 싶다. 비누 같은 사람, 그 사람은 어디 있을까.
세상에는 기름때 같은 무리가 많다. 그들은 겉으로는 제법 아름다운 빛깔을 띠고 있으며, 항상 눌어붙을 데를 찾아 맑은 물 위를 떠돈다. 그러다가 그럴싸한 물체를 발견하면 돌진하여 눌어붙는다. 그리고 조금씩 야금야금 검은 때로 물체를 더럽힌다. 더 큰 문제는 한번 붙은 기름때는 쉽게 떨어지지 않으며, 다른 때를 불러들여 덩치가 차츰 커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누는 어떤가. 비누를 거품 내어 씻으면 더러웠던 것들이 말끔히 지워진다. 비누는 자기 몸을 풀어 거품을 내지만 그 거품은 몸을 부풀려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때를 꾀어 떼어내기 위해서이다. 비누는 자신의 몸을 녹여 때가 낀 몸과 옷가지를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비누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실천하는 성인의 품성을 지녔다.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면 귀에 듣기 좋은 말은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내 일신이 깨끗함을 잃지 않으며, 더러운 물에 발을 적시거나 진흙탕에 빠지지 않는다. 이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누 같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고 꿀맛에 홀려 여우들을 곁에 두고자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그릇이란 일찍이 정해지는 것이라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걸러내지도 못한다. 작은 그릇에 많은 것을 담으면 흘러넘치고, 그 그릇을 들면 깨져 버린다.

 

▲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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