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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집] 또한 지나가리라
권선옥 (시인·논산문화원장)
기사입력  2024/07/21 [16:13]   놀뫼신문
 

우리가 지금처럼 넉넉하게 살지 못하던 시절에 ‘없는 사람은 여름이 낫다’라는 말이 있었다. 겨울 추위보다 차라리 불볕더위가 견딜 만하다는 말이다. 가옥 구조도 허술한 데다 옷가지도 변변찮고 땔나무마저 귀한 실정이니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자리도 없어 남정네들은 술판을 벌이거나 노름판을 기웃거리기도 하였을 테다. 가난한 겨울은 더 춥고도 길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대답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예전에는 계절에 대한 선호도가 생활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았는데 요즘은 개인의 취향이 크게 작용한다. 우리 사회의 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생긴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겨울보다 여름이 좋지만, 더위보다는 추위가 차라리 낫다고 애매하게 답할 것이다. 

겨울에는 추위가 싫었다. 녹아내리는 것보다 얼어붙는 것이 무섭다. 한번 얼면 그것이 다시 녹아도 얼었던 상처를 지우지 못한다. 모두가 팔짱을 끼거나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겨울은 지루하게 긴 터널이다. 봄이 되어야 새싹이 돋고 꽃도 피어난다. 자연이 깨어나면 사람도 힘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봄을 갈망한다.

봄을 맞아 처음에는 좋기만 했다. 꽃이 피고 뒤를 따라 초록빛 잎이 피고, 새들은 밝고 가벼운 소리로 노래했다.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살기에 좋았다. 그런 날이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계절을 다스리는 신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햇살이 힘이 붙어 점점 땅의 온도를 높이더니, 마침내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들을 못살게 굴었다. 

올봄에는 가뭄을 견디기에 힘들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가뭄을 싫어한다. 작물의 잎이 마르고 줄기가 힘을 잃어갈 때는 마치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를 바라보는 것같이 안타깝다. 농사꾼은 작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뿐, 경비와 소득을 계산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댁에서는 텃밭에 물을 주느라고 수도세가 15만 원이 나왔다고 해서 그 긍휼지심에 찬탄하였다. 그분이 오래 농사를 하신 분이라 그랬지 젊은이였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가뭄은 견디기 어려운 구렁텅이다.

가뭄이 절정에 달했을 때에는 어서 장마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드디어 고대하던 비가 내리자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하였다. 비가 오는 것이 반갑고 감사했다. 빗방울이 굵어지면 쾌재를 불렀고, 빗줄기가 힘을 잃으면 그칠까 염려하였다. 난폭하게 변해서 온갖 만행을 일삼는 장맛비의 폭력은 예상하지 않았고, 그런 염려를 하는 것은 방정맞은 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제력을 잃은 장맛비는 엄청나게 내려 많은 피해를 안겼다. 비가 내리는 것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롭고 짜증이 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간절히 기다리고 반갑게 맞았던 비는 두려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일기예보를 보며 폭우를 걱정하고 장마가 끝나는 날을 기다린다. 

이제 장마의 뒤에서 폭염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장마가 돌아서기만 하면 곧바로 들이닥쳐 우리를 핍박할 것이다. 그러면 또 무더위가 물러가고 맑은 햇살이 따끈따끈하게 내리쪼이는 가을이 어서 오기를 바랄 것이다.

가뭄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장마가 끝이 없다면, 겨울이 계속되고 봄은 오지 않는다면.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끝이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까. 그러나 오늘은 가고 내일이 온다. 내일은 분명 무언가 달라진다는 생각,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를 견디게 한다. 

다만 길고 짧음이 있을 뿐, 끝이 없는 것은 없다. 어두운 밤은 마침내 밝아지고, 눈부시던 햇살도 머지않아 힘을 잃고 만다. 고난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지 말아야 하고, 행운의 끝을 생각지 않는 교만도 버려야 한다. 고난의 끝장을 보겠다는 용기와 행운의 끝자락을 생각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깊은 밤에 깨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곱씹고 있다.

 

▲ 권선옥 (시인 / 논산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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