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많이 상한 것 같아요” 최근 들어 필자를 보는 사람들마다 비슷한 얘기를 던진다.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지난해부터 시작된 필자를 향한 공격의 수위가 감당할 범위를 넘어섰다. 나름 강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방적인 십자포화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공격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일을 잘해서’라는 웃지 못할 이유다.
네 편 내 편 갈라 치기가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인 줄만 알았는데, 농촌 마을에서 그것도 필자가 생활하는 인심 좋은 곳에서 이런 정치 언어가 난무할 줄이야. 그저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일이 좋아 열정을 쏟아부었는데, 이것이 네 편 내 편하며 철천지원수 운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4년 전, 필자가 처음 만난 한 공동체가 있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이들이 많았고, 늘 힘이 되는 관계로 공동체를 소개할 때면 자부심이 넘쳐나곤 했다.
그런 귀한 공동체에 1년 전, 엄청난 갈등으로 곤욕을 치르는 일이 있었다.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갈등의 꼬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회칙 위반으로 공동체를 나간 몇몇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가짜 뉴스를 양산하며 공동체를 훼손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더니 결국은 필자에게도 화살을 겨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하며 버텨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나가고 싶은 응보주의적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의 생각으로 긍정의 결과를 만들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기에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는 성경 말씀을 종교를 떠나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성적 생각과 신체의 반응은 달랐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가 이어지다 보니 결국 장염으로 병원 신세까지 졌다. 쉬는 동안 전화통에 불이 났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까지 괴롭힐 수 있느냐’며 자신이 당한 일인 양 분을 내기도 하고, ‘우리가 해결할 테니 아무 생각 말고 건강만 챙겨라’며 가장 맛있는 부위의 소고기를 사다 주시는 분들까지, 힘들고 서러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위기 협상 전문가에 따르면, ‘많은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그렇지만 단순히 듣는 행위를 넘어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대화가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힘이 된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필자의 감정을 세심하게 읽어주었던 지인들을 통해 실제 큰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서 공동체의 가치와 선을 위한 일이라면 힘이 들고 고난이 찾아와도 견뎌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언제든 흔들거나, 또 다른 프레임을 씌울 수도 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돼 있어. 소인배들이 험담을 하든 시기를 하든 귀담아듣지 말고 차분하게 준비를 해라’ 이대환 작가의 ‘붉은 고래’ 소설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필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인 것 같다.
▲ 노태영 행복을 리추얼하는 작가/ 라이프코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