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은, 세종특별자치시에는 하나도 없는 문학관이 네 개나 된다. 그 중 하나가 강경산 중턱에 자리잡은 소금문학관이다. 강경 지명은 동서남북 분포도다. 동흥리, 서창리, 남교리, 북옥리. 논산 반야산 남반부에 터 잡은 건양대학교도 서울 4대문처럼 4대문이다. 정문 하나뿐인 거 같지만, 잘 찾아보면 넷이다.
그 중 정문과 반대편인 짐나지움 쪽의 작은 문은 4년 전 생겼다. 문이라기보다, 늘상 열려 있는 출입구다. 2019년 6월, 김홍신문학관이 개관하면서 건양대 캠퍼스로 연결되도록 한 통로이다.
출입구는 자그만 계단 통로이지만 논산시민의 삶에 준 변화는 결코 적지 않다. 논산시민 상당수의 보금자리가 된 내동아파트 대단지에서 건양대 운동장과 반야산 등산로를 찾는 이들이 통과하는 요충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야산등산로 지형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상행 주등산로에서 빗겨나 내동초등학교 쪽 산등성을 타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김홍신문학관 앞에 주차한 다음 입산하는 게 수월해져서다. 차만 몰려오는 게 아니다. 특히 주말에는 자전거들이 문학관 앞 도로에 널부러져 있다. 인조잔디가 깔려 있는 건양대 운동장이나 테니스장을 자기네 학교 운동장이나 집 마당처럼 뛰놀며 종횡무진하는 초중생들 자전거다.
문학관은 마실 오가는 옆집 사랑채
이렇게 문학관 앞마당 오가는 이들이 늘어가지만, 막상 문학관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많지 않다. “건물이 커서 뭐하는 곳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선뜻 들어가 볼 엄두가 잘 나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문학관 카페에 들른 외국인 유학생의 소회다.
어디 외국인뿐이랴. 초창기에는 택시기사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논산시민 중에서도 문학관 안내입간판만 봤지, 막상 들어와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 상당수다. 개점휴업이라고나 할까, 문학관 개관하고 나서 얼마 안돼 불청객 코로나가 들이닥쳤다.
시민을 향해 문을 서서히 연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지난 가을 4/4분기 때부터 특강으로 생활법률, 지역축제, 영화감독 토크쇼 두 번, 김홍신 작가의 송년특강 외에도 한국무용발표, 사진전 등의 문화행사가 치러졌고, 교육으로는 팟캐스트 등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대외 활동과 동시에, 내실화 작업의 일환으로 김홍신 작품의 전산화와 인터넷 카페 개설 등 전국화에도 시동을 걸었다. 최근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논산 문화예술교육 웹 캘린더를 송출하고 있다. “2023 새해에는 논산시민들이 문학관을 옆집 사랑채 마실 가는 기분으로 오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용덕 김홍신문학관 대표의 초대말이다.
문학관 구석구석, 숨은그림찾기
[책벽] 지상 3층, 지하1층의 김홍신 문학관에 들어서면 1~2층 뚫려 있는 왼쪽편의 맘모스 책벽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출간된 김홍신 작품 137권 포함, 총 217권이 꽂혀 있다. 한국 최초의 밀리언 셀러인 “인간시장”과 “김홍신의 대발해” 원본은 물론, 절반 분량으로 축약된 다이제스트본도 함께 진열돼 있다.
한국 출판사상 570만부 발매라는 경이적 숫자를 기록한 “인간시장” 특별관은 김홍신문학관 1층 외에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 주제관을 대표하고, 파주출판단지 안에도 김홍신방이 있다. 발해관은 문학관 2~3층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학관 이곳저곳에 적혀 있는 문장들 읽어내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리는 공간이다.
[모루] 김홍신 문학관의 상징물 중 하나는 ‘모루’다. 문학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모루는,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는다. 모루는 작가의 집필실인 모루정 앞에도 있고, 사택 안에도 있으며, 카페 이름도 모루이다. 김홍신의 호 모루는, 대장간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릴 때 쓰는 받침쇠이다. 김홍신 작가의 국회의원 시절, 홍문택 신부가 ‘김홍신은 세상을 떠받치는 버팀목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호를 ‘모루’라 지어 주었다고 한다.
[미팅공간] 문학관은 모임장소로 이용 가능하다. 지하 세미나실과 3층의 문학전망대는 다수가, 1층의 모루카페와 안쪽 공간은 삼삼오오 차를 마시며 대화하기에 적합하다. 김홍신 문학관 옆에는 집필관이 나란하다. 집필관 2층 베란다에서도 건양대캠퍼스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동아리들의 신청이 있으면 2층 문화사랑방도 개방된다.
김홍신문학관은 전형적인 산아래 집이다. 산아래 집은 사실상 산주(山主)가 되기도 하다. 반야산 서남쪽 종점인 문학관 자리는, 특히 집필관 2층의 포토존은 ‘반야산의 氣가 모이는 단전’이라는 해설사 설명이 과학적이든 아니든, 엄마 품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은진초등학교에서 100년 된 고목의 밑둥가리가 여기서는 절구통이 되어 풀꽃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문학관 뒤란과 산책로 흙길
[파라솔쉼터] 대화나 모임 공간은 외부에도 도처다. 건물 초입에는 의자와 파라솔이 있어서, 오가는 길에 쉬어가는 쉼터다. 건양대로 내려가는 계단에 철푸덕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 반야산 등산로 초입의 파라솔쉼터도 건양대와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다. 보온병 커피를 음미하며 작은 음악회를 향유하기에 딱 좋은 천혜의 힐링처다.
[오죽&차돌바위] 등산로 초입에 서 있는 돌기둥과 오죽(烏竹)도 문학관으로 이사온 식구들이다. 노성면 병사리 유봉산 산맥은 차돌바위로 형성되어 있고, 산 아래 유봉영당 뒤편에는 오죽이 자라고 있다. 명재고택 측에서 기증받은 차돌(부싯돌)과 검은대나무가 문학관 길목과 뒤란을 지키고 있다. 유태평양이 부른 ‘대바람소리’의 작시자이기도 한 김홍신 작가의 대나무사랑은, 바람사랑은 문학관 창문 타이포에도 알알이 새겨져 있다.
도시화가 진전됨에 따라 흙마당이 사라져간다. 뜨락, 텃밭, 뒤란 등은 딴 나라 말처럼 들린다. 김홍신문학관 뒤란은 최소한의 마당문화로 장독과 꽃밭을 유지, 공유하고 있다. 뒤란의 대나무 위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이어지는데, 산 중턱에는 늠름한 조선송 몇 그루가 반야산의 기품을 웅변해 주고 있다.
[반야산골짜기 신작로] 문학관 뒤란, 산아래 영산홍꽃밭은 반야산의 봄을 붉게 물들이는 전령사다. 그 꽃밭에서 계단을 버리고 산 밑으로 굽이치는 신작로길로 접어들면, 켜켜이 숨겨진 골논들이다. 반야산에서 유일하게 농사를 짓는 곳이다.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다락논 양쪽의 개울에는 송사리와 우렁이가 살고, 고라니가 물 마시러 내려온다.
꿩 가족뿐 아니라 이름 모를 새들의 놀이터인데, 수름바위(취암鷲巖)를 실증이라도 해주듯, 아주 가끔씩 수리도 보인다. 골짜기 너머로는 아직도 보수중인 관촉사 은진미륵이 좌정해 있고, 그 절벽에는 부엉이 가족이 깃들어 있다. 반야산 팔각정 안쪽으로는 갈라져 있는 호랑이바위가 여전하다.
그쪽 지세는 소의 형상이라 한다. 그 건너편인 반야산의 남서쪽, 내동초등학교와 건양대 짐나지움 사이의 골짜기는 트랙터도 오가는 인간의 경작지면서 동시에 은둔 별천지다. 그 골짜기의 초입, 사람책과 자연예술이 만나는 지점의 김홍신문학관은 동서고금, 자연과 인위의 문화 접점 같다. 논산의 문학문화예술의 시냅스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