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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한훈기념관’ 개관] 한훈, 누구길래 계룡시에 기념관까지 개관했나?
기사입력  2021/08/24 [16:16]   놀뫼신문

|역사적인 ‘한훈기념관’ 개관|

한훈, 누구길래 계룡시에 기념관까지 개관했나?

 

 

 

계룡시는 8월 15일 독립운동가 ‘한훈기념관’을 개관하였다. 2015년 독립운동기념사업 기본계획 수립을 계기로 2016년 고택복원사업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고증과정에 어려움이 따르면서 2018년 기념관 건립으로 변경하였고, 올해 6월 4년 만에 완공을 한 것이다. 

기념관 위치는 신도안면 계룡대1로 35, 선생의 고택 부근이다. 생가의 상징인 우물가에서 광복절날 대선후보들 화환도 즐비한 가운데 개관식 테이프를 커팅했다. 한훈기념관은 장정리 일원에 총 28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였다. 지하1층, 지상1층 연면적 496㎡ 내부는 전시관, 교육체험실, 사무실, 수장고 등의 시설이다. 기념관 아래쪽으로는 국궁장 ‘신도정’이 있고 좀더 내려오면 무궁화공원인데, 여기에 광복단결사대탑이 우렁차게 서 있다. 

광복단결사대는 1920년 한훈 선생이 조직한 단체이다. 이 결사대로 그는 사이토총독 처단을 기도했으나 체포되고 만다. 기념탑 정류장에서 버스 타려는 분에게 ‘한훈기념관’을 물어봤다. ‘잘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계룡시민 중에도 모르는 분이 있을진대, 타지 사람들이랴 싶다. 한훈, 과연 그는 누구인가? 영화 『밀정』 등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노출된 것처럼, 한훈은 국내 한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암약했던, 총독 등 일제고관 암살단원이었다. 

그의 둘째손자가 한상빈 신도안향우회장이다. 광석면 신당리 한상빈 씨 자택에는 그 동안 숨겨왔던 한훈 선생의 글씨들과 “독립정신(獨立精神)”을 구가하는 김구 선생의 친필이 걸려 있었다. 장손 한상회 씨와 한상빈 씨가 소장하고 있던 모든 유품은 기념관으로 기증하였고, 이번 개막식에서 공로패를 전수받았다. 

김구와 한훈, 상해임시정부의 수장인 김구 선생과 국내무장투쟁의 대부인 한훈 선생은 조국독립을 최일선에서 온몸으로 실천해온 영웅이다. 하나는 국외를, 하나는 국내를 커버하였다. 해방 후 귀국한 김구 선생은 민족의 국부(國父)으로 부각되었다. 

 

해방후 더 탄압받은 국내파 독립투사와 후손들

 

그런데 잠깐, 굳이 비교할 건 아니지만 국내파들은 어떠했는가? 이승만 정권의 눈에는 해외파(임시정부 사람들)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국내파였다. 국내파, 그들은 누구였는가? 일경, 조선밀정의 서슬이 시퍼런 한반도에 그대로 남아서, 그들의 감시망을 피해가며 암약한 행동파들이다. 호랑이 굴 속에 남기를 자처한 일사각오 결사대원들이다. “일경보다 무서운 건 조선밀정들였지, 우리 같은 사람들 검거하면 1계급 특진하니까.” 후손들이 기억하는 말 중의 하나다. (연관기사=  2018-06-20일자 한훈 광복단결사대장의 후손 한상빈 씨 이야기 “일본사람에게도 배워야 한단다” https://nmn.ff.or.kr/23/?idx=917132&bmode=view 참조)

국내파가 숨어들 데라곤 거의 없었다. 그들은 산속에서 여물지도 않은 감자를 생으로 씹어가며 국내 곳곳을 종횡 무진하였다. 혹자는  꼬집을지도 모른다. “한훈 선생이 이렇다 할 공을 세운 것도 없는데.....?” 국내에서의 암살 성공률은 해외파보다 부진했다. 국내 VIP 주변에는 해외에서의 경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도면밀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의 한훈선생 공훈록을 보면 1889년 청양 출생으로 18세인 1906년 홍주 의병진에 가담한 항일투쟁부터 1920년 체포되어 투옥 전의 행적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1907년=신도안에서 비밀결사대 조직, 을사오적 처단 준비. 1913년=풍기에서 대한광복단 조직, 1915년=광복회에 참여 군자금 모금, 친일파 처단에 전력, 1919년=조선독립군정서 가입이다. 다음해 1월 상해임시정부에서 국내무장투장을 통괄하던 도산 안창호 선생과 임정수뇌부들과 독립투쟁 방략을 논의하였다. 폭약 40관, 권총 30정, 실탄 3천발을 압록강 건너 경성까지 운반하는 데는 성공한다. 그러나 암살단 김상옥과 사이토총독 처단을 준비하던 중, 밀정의 밀고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19년 형극의 옥살이로 들어갔다.

 

 

 

 

 

 

 

 

계룡시가 독립운동가를 선창(宣暢)해야 하는 이유

 

기념관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됐다. “청양사람을 왜 계룡시에서 기념하느냐”는 것도 그 중의 하나.  한훈은 19세인 1907년에 계룡산 신도안으로 들어왔다. ‘나철’과 함께 을사5적을 겨냥했다. 당시 의병활동의 본산지는 신도안이라 사람들이 속속 잠입해온 곳이다. 1920년 의병활동 발각으로 2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939년 이십여 년의 복역후 형집행정지 처분으로 출옥되었다. 그가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온 곳이 예전 신도안 정장리였다. 1945년 그는 서울 견지동에서 광복단을 재건하였고 암약을 계속하던 중 해방을 맞는다.

일제강점기 경찰을 그대로 승계한 이승만 정권의 눈에, 국내파들은 여전히 감시의 대상이고, 싹부터 짓밟아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국내파 자녀들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후손들은 해방 후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한훈의 외아들 한세택은 불이익을 당하며 분을 참지 못할 때 허공에다 대고 육혈포를 쏴대기도 했다. 독립정신으로 무장한 국내파들은 이승만 정권에게만 눈엣가시가 아니었다. 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북한군에게 납치되어 가다가 흑석리쪽에서 피살되고 만다. 상을 받아도 시원찮은 마당에 그는 남·북 양쪽에서 버림을 받고만 것이다. 계룡시민참여연대는 ‘전시관에 시대착오적인 탱크모형을 만들어 예산을 낭비하였다’고 지적하였다. 한훈의 마지막 장면에 소련제 탱크가 등장하는 것은, 그의 최후 비극 현장이어서건만... 

안보를 총괄하는 국방수도 계룡시에 한훈기념관이 들어선 것은 만시지탄의 감마저 없지 않다. 경북 영주에는 ‘풍기 광복단기념공원’이 있다. 1913년 한훈이 풍기읍에서 대한광복단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전국구였던 한훈 의사는 경북의 광복단결사대장이 아니었다. 조선독립군사령관이었고, 그의 주 활동무대는 충남 신도안이었다. 그래서 계룡시 산속에 그의 기념관이 섰다.   

 

기념관은 시작일 뿐이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서다. 한훈 선생의 독립운동 동지였던 조소앙, 여운영, 신익희,  이승만, 안창호, 손병희, 한용훈, 이강녕, 민영환, 윤봉길, 유관순, 홍범도 등과, 한훈 선생의 부하였던 김좌진 장군은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서훈되었다. 그런데 백척간두의 위험 속에 독립운동 1세대(의병)에서 4세대(광복군)까지 전 생애를 바쳐 최고 험지인 국내에서 결사 투쟁을 일관해온 한훈 선생은 3등급이다. 계룡시민의 자존심을 넘어서 공정한 대한민국의 가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한훈 선생의 서훈 1등급으로 재평가하는 작업이 급선무이다. 

또한 2014년도 학술대회에서 발굴된 32명의 계룡시 출신 독립운동가 중 홍순봉, 김광옥 열사만 건국훈장 애족장이 서훈되고 아직도 30여 명이 심사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계룡시의 관심과 후속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년간 한훈 선생을 연구해온 김철규 계룡학연구회장의 충언이다. 

한훈기념관 자체의 운영도 내실에 내실을 기해가야 한다. 애국애족 프로그램이 알차게 운영되지 않는다면, 건물 하나만 덩그라니 세워진 모양새다. 올 하반기 새로 부임한 사회복지과 김아영 복지정책팀장이 밝히는 <기념관 활용 및 운영방안>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이진영 기자

 

 

한훈기념관 활용 및 운영방안

 

현재는 도슨트(해설사)의 해설만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학예사 1명 배치 예정(道에서 선발)이다. 

 

 

 

❶ 기념관 활성화 체험프로그램

 

∞독립에서 호국을 찾다(가칭)

  •  기념관 관람, 병영체험장 체험, 계룡대 투어 연계
  •  유치원생, 학생, 군 장병, 교육 연수생 등 대상(청소년 현장체험 등 각급 학교 연계 정기 프로그램 별도 운영) 

 

∞독립한 정신 없이 독립은 없다(가칭)

  •  관내 독립운동 사적·유허지 등 해설이 있는 유적 탐방 
  •  청소년 계룡의 독립운동사 감상문 쓰기 대회(별도시상)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11.17.) 개최

  •  지역 시민단체 등 주민 주도형 기념식, 애향심 고취〈지원 프로그램〉- 2층 다목적실

 

∞「송촌 바라기 연구모임(가칭)」 육성

  •  지역시민, 청소년 등 역사 소모임 지원 및 활동공간 제공

 

∞계기별 전시 및 지역주민 문화활동 공간 대여

  •  국내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 특별전 유치
  •  지역 문화단체(*서클활동 포함), 학생 작품전 등 전시공간 대여

 

∞계룡지역의 독립운동사 발굴 및 심포지엄 개최

  •  본청 보훈부서(사회복지과) 주관, 정책적 협업 수행
  •  향후, 지역의 애향심 고취 사업의 추진 자료 활용

 

❷ 기념관 활성화 교육프로그램

 

∞(전시탐방) “해설이 있는 관람”, 도슨트의 전문 안내 

  •  한훈연대기(IT활용) 검색, 교육체험실(*24인) 영상 교육
  •  한훈 활동 관련 유물 및 기록 전시물 관람
  •  한훈(*김좌진, 김상옥) 포토존, 감옥체험, 감사의 글 남기기
  •  사색의 공간 상상체험
  •  한훈의 동지들(*40인 홀로그램), 지역 독립운동가 만나기 등 

 

∞“송촌서당(가칭)” 역사·인문·문화 강좌 운영

  •  계룡지역 독립운동사(*사적·유허지 등 현장체험 포함)
  •  송촌과 함께 하는 시 창작교실
  •  소학, 대학, 중용 등 유학문화 산책
  •  삼국지와 삶으로 찾는 인문학 세계
  •  한국 근대사 아카데미
  •  송촌 서예·바둑 교실
  •  사진·서화·성악 등 입문교실

 ※「송촌서당」분기 또는 반기, 계기별 강좌편성, 수강료 별도책정

 

❸기념관 활용 및 운영의 기본방향

 

∞지역의 대표 독립운동 관련 호국보훈시설로서 위상을 제고할 수 있도록 전시+교육+체험 프로그램 운영

  •  (전시) 도슨트를 활용한 전시관 안내·해설 탐방
  •  (교육) 역사, 인문학 등 자기개발 프로그램 개발·운영
  •  (체험) 관람객, 학생 등 참여 계기 특화 프로그램 운영

 

∞지역 문화센터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복합 기념관으로서의 운영방안 마련

  • 계룡대 안보체험 등 호국관광 프로그램 연계
  • 지역 독립운동가 및 문화선양 연구 소모임 지원
  • 사적 및 유허지 등 지역 독립운동사 발굴, 선양사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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