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사람들| 광천식품 조경래·장동현 모자
소량씩 만들어서 내놓는 반찬가게 ‘광천식품’
조경래, 21년 전 ‘광천식품’ 문을 연 주인 이름이다. 얼핏 남자 이름 같지만, 음악 들으며 차 마시는 우아한 주부를 꿈꾸던 평범한 여성의 이름이다. 그녀는 꿈을 잠시 미뤄둔 채 정육점이 많은 2구역 한자리, 예닐곱평 남짓한 이곳에 반찬가게를 열었다. 스티커에는 ‘홍어무침·반찬전문’이라고 박았다.
“21년 전 당시 반찬가게는 좀 낯선, 초창기였을 거 같은데요?” 기자의 질문에 조대표는 30년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에 처음 들어와서는 채소시장에서 일했어요. 강원도 배추가 도착하면 내려서 다듬고... ” 그 일을 한 5년 정도 하다가 커피아줌마로 변신한다. 시장 누비며 길거리 커피 5년쯤 팔았을 때, 가게에서 집 반찬 만들어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시동생이 광천에서 ‘광천식품’이란 이름으로 반찬가게를 냈다. 2호점은 6개월쯤 후 분점 형식으로 논산에다 냈다. 화지중앙시장의 광천식품이고 조경래 대표의 영업장이 되었다. 가족경영 제3호는 시누이가 유성에다가 냈다. 광천식품의 원조인 시동생은 현재 중국무역업으로 돌아섰으므로, 이제 광천식품 원조는 논산이 된 상황이다. 조대표의 친정은 옥천이므로 ‘광천’은 이름만 차용한 셈인데, 그래도 광천의 특색은 하나 있다. 스티커 ‘홍어무침·반찬전문’ 밑에는 ‘각종 젓갈도·소매’가 써 있는데, 젓갈반찬도 강세인 것이다.
새콤, 달콤, 매콤 홍어무침
화지시장은 대개 부부가 함께 운영하지만, 광천식품 조대표는 단신 영업이었다. 남편인 장정길 씨는 유리가게, 레미콘 등 별도의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두 부부 사이에 아들이 둘, 장동남, 장동현 연년생이다. 성장한 두 아들은 어느날 상의를 했다. “어머니가 나이 들어가시는데, 저 반찬가게는 나중에 어떻게 할 것인가?” 결론은 ‘동생이 엄마를 돕다가 가게를 물려받기로 함’이었다.
막내 장동현 씨가 26살 때, 1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동현 씨는 의상학과 남자 졸업생이었고 군복무도 마친 상태였다. 진학 당시의 꿈 의상디자이너는 막상 공부해보니까 본인의 현실과 거리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진로로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가족 회의 후 시장으로 출근하면서 일을 배웠다.
10년이 지난 지금 무를 써는 솜씨는 엄마를 능가한다고 아들 자랑이다. ‘진짜 그러한지 보여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엄마에게서 칼자루를 넘겨잡은 아들, 포쓰가 장난이 아니다. 생활의 달인(達人), 그런 데 나가봄직한 현란한 손놀림이다.
동현 씨는 어려서부터 요리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광천식품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반찬은 겉절이, 열무김치, 총각김치 등 김치류란다. 묵은지에 질린 주부들이 집에서 직접 겉절이를 하려면 채소 한다발 사고 등등 이것저것 해야 하는데, 이 또한 소량이 아니다 보니 ‘질림’은 이어진다. 이러저런 이유로 요즘 주부들은 국이나 찌개 정도만 하고, 나머지 반찬은 제때제때 사서 먹는 추세다.
광천식품에서는 김치만 잘 나간다기보다, 골고루 나가는 편이란다. 이유가 있다. 판 벌이는 김에 다음날 팔 거까지 양산하지 않는 까닭이다. 소량(小量), 하루에도 같은 반찬을 두세 차례 만들다 보니 신역이 고되다. 그래도 반찬가게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두 모자는.
이 집에서 잘 나가고 택배로도 인기인 대표 식품은 홍어무침이다. “새콤, 달콤, 매콤, 이 3박자가 잘 맞아야 해요.” 쉬운 듯 어려운 듯 고수들의 비법이니 통과, 통과~~ 반세기 엄마의 손맛을 능가하기 어려운 아들은 손끝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네이버에서 <홍장군 홍어무침>을 입력하면 광천식품의 홍어무침이 뜬다. 아들은 한때 블로그를 집중했고 요즘은 유튜브 필요성도 절감하지만, 아직까지는 오프라인 편향이다. 가게 일이 분주한 탓이기도 하다.
호들갑 서비스보다는 품질 서비스
형은 본인이 원하던 호텔과 여행업쪽으로 나갔다. 동생은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논산에 주저앉았다. 논산 친구들이 많다보니 퇴근 후에는 노느라 바빴고, 결혼 후에는 딸바보가 되어 개인 시간이 별로 나지 않는다. 일요일마다 쉬는데, 엄마는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 6시쯤 출근하여 재고 없는 가게의 반찬통을 채워나간다.
8시쯤 출근하는 아들은 괜시리 미안해진다. 그러나 엄마는 정반대, 아들이 고맙다. “평범한 공무원 같은 걸 원했지만 내 옆으로 와준 아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할머니들은 손자손녀에 뻑 가지만 난 아들이 더 좋은 걸 어떡해?”
일로 돌아와서는 여전히 엄격함을 전수한다. 요즘 마늘값이 비싸다. 원가 생각하면 조금 덜 넣어도 되련만 지금까지 하던 정량대로 넣는다. “처음처럼 하자. 정직하게 살자, 정성껏 하자”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아들도 한 마디 거든다. “우리는 손님들에게 친절히 대하되, 적정선을 유지하는 편이예요. 과잉친절을 오래 하다보면 내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지친다고 하잖아요.”
취미가 아빠는 낚시, 엄마는 해외여행, 아들은 볼링인 활동적인 집안이다. 외향적이던 아들은 가게에 와서 할 말만 하고 차분해진다. 롱런을 위해서란다.
이 집의 진짜 서비스는 질(質)이다. 속정과 뚝심이다. 속정은 이심전심, “이거 우리집에서 따온 거야”라면서 과일 같은 걸 챙겨주는 손님도 가끔 있단다.
늘 함께 하는 이웃 가게들과도 속정이다. 일찍 나오는 엄마는 아침도 시장에서 해결하는데, 우편 삼익정육점에 가서 함께 먹는 편이란다. 좌편 중앙정육점 사이는 야쿠르트 차 한 대가 정차할 공간이다. 명함을 보니 신선·유기농 선별샵 <Fredit> 논산점 프레시매니저다. 건너편으로는 대신유통, 시장닭집, 화장품나라 그리고 부자식품사위네다.
현재 시장 안에는 반찬가게가 예닐곱 곳이다. “식당마다 음식 맛이 다르듯, 손님들이 입맛에 따라 각자 알아서 찾아가시겠죠. 그러니 같이 잘 되면 좋겠어요. 각자 할 것 하면서요.” 젊은 사장의 충심이 읽혀진다. 아차차, 손님도 밀어닥치고 얘기에 몰입하다 보니 맛보기를 건너뛰었다. 그럼에도 기사작성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 같다. 음식이란 ‘맛을 봐야 맛을 아는 것’이 아니기도 하기에!^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