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
- 치사랑 사라져가는 즈음에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벨은 정년을 앞둔 보안관이다. 그는 연륜과 풍부한 경험이 있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 잡지 못해 살인범을 놓친다. 사건을 느리고 무기력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가 은퇴를 결심해 본다. 그러나 그의 인생 자체에는 은퇴가 없지 않은가. 저 가을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봉동리 노인회관의 소슬(蕭瑟) 풍광
우리 마을 봉동리는 하절기로 들어서면서 노인정에서 수시로 잔치를 벌였다. 얼마 전엔 안 노인네의 팔순 잔치가 있었다. 마을에 장례가 갑자기 생겨 팔순잔치를 연기하다 보니 토요일 예정이, 다음 수요일이 되었다. 자식들이 모두 서울이나 대전에 살며 직장에 나가는 관계로 음식 준비는 본인이 손수 주도해야 했다. 물론 자손들과는 미리 날 잡아 잔치를 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따로 대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유 불문하고 자식들이 와서 장도 보고 음식을 준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주인공 팔십 노인과 등이 굽은 마을 노인들이 나서서 전날부터 준비했다. ‘시집갈 달에 등창 난다’고 주인공은 며칠 전 손가락을 낫에 베어 밴드를 칭칭 붙이고 고무장갑을 낀 채 일을 했다. 다행히 교사인 큰 아드님이 방학 중이라 심부름도 하며 도왔다.
나는 남편이 노인회장이 되고부터 노인정에 잔치가 있으면 무조건 나가서 일을 한다. 젊은이는 아무도 없다. 그들은 원래 노인정에 얼씬도 안 한다. 무관심하고 무심하다. 당일 아침 이장이 마이크로 모두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했지만, 주인공의 남편 되시는 어른이 따로 오토바이를 타고 돌면서 직접 점심에 초대했다. 그 덕에 젊은 사람도 평소보다 많이 모였다. 그날 보신탕을 준비했다. 나는 나대로 우리집 오색 백일홍으로 만든 꽃다발을 선사했고 축하드리는 글을 낭송해 드렸다.
그 다음 말복 잔치가 있었다. 예년엔 주로 닭고기 음식을 했는데 올해는 지난번에 이어 보신탕을 진하게 끓였다. 장보기는 이장, 노인회장, 총무, 여부회장이 마트에서 했다. 그날 “홍어를 잘 못 사왔다”고 부녀회원이 어찌나 나무라는지 마트에 넷이 다시 가서 사정을 해야 했다. 그냥 좀 넘어가면 오죽 좋은 일인가. 나는 홍어무침을 해 본 일이 없어 옆에서 눈치껏 배우는 중이다. 우리 마을 단골 메뉴라, 나도 닥치면 해내야 한다.
행복은 스스로 챙겨야 가능
전통적으로는 “나라 상감님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 했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노인을 공경해 주겠는가. TV를 보면 부녀회원들이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점차 시골은 평균 연령이 높아져 이곳 부녀회원들도 대개 칠십에 가깝다. 이제 노인은 스스로 준비하여 당당해지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행복의 길을 찾아야 한다.
프랑스 노인들은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과 대인관계(부부, 자녀 등) 그리고 취미를 든다고 한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도 똑같이 생각하는 보편적 조건이다. 그들은 80%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제 소위 공경(恭敬)이라고 하는 ‘치사랑’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앞으로 자식과 노부모는 동격으로 살아야 한다. 대신 나라에서 이런저런 장치로 거들어 주니 고마운 일이다. 사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 모른다. 사회복지가 있을 뿐이다.
그해 9월 달, 국제노인 인권 단체, 헬프 에이지 인터내셔날에서 96개국의 60세 이상 ‘노인의 삶의 질’ 을 조사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61위, 스위스가 1위, 일본은 17위, 베트남은 40위였다.
GNP 3만 불에 육박하는 우리나라가 중하위에 머무는 걸 보면, 삶의 질은 경제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경우에도 빈곤층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70~80대가 노후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갑자기 노인 가구가 되다 보니 세상의 인심을 따라 잡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2위이고 그중 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1위라고 한다. 글쎄, 미국에도 많은 거지가 리어카에 살림을 싣고 다니며 홈리스homeless 생활을 한다. 그렇다고 다 자살하지 않는 걸 보면 행복은 낙천적 마음가짐과 건강이 좌우하지 싶다.
덩굴째 널려 있는 노년의 혜택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하지만, 나는 제주에서 육십 대를 보내면서 동네 도서관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거기서 컴퓨터도 배웠고 글쓰기도 배우며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회관에서도 글쓰기반에 들어 수필과 시쓰기를 배웠고 글쓰기라면 어디든 쫓아다녔다. 노인 복지회관에서는 인터넷 교육을 받아 실버IT 도우미로도 일했다.
논산 시골마을로 이사 와서는 마을 보건 진료소에서 하는 국선도 수련을 주 2회 받는다. 3년 넘게 수련하다 보니 몸이 반듯해졌다. 또 시내 도서관 독서회원이 되면서 심심찮게 도서관 덕을 본다. 도서관 평생학습관에선 작가를 모셔와 문학 수업도 수시로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문학기행도 미술관도 함께하고 문집도 내어준다. 제주 예술문화 재단에서도 문예진흥금을 받았고, 이곳에 와서도 충남문화재단에서 수필집 내는 데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정말 내 돈 안 들이고 취미 이상의 생활을 하는 편이다.
마을 보건 진료소에선 시월이면 독감예방 주사를 놓아주었고, 치매와 중풍 예방 교육에 힘써 준다. 사소한 병은 진료소에서 무료로 받고, 의료보험으로 부담 없이 병원엘 간다. 노인 세대가 없다면 병원 운영이 어려울 만큼 노인들은 물리치료를 많이 받는다. 이렇게 노인의 혜택이 많건만 무엇을 더 바라기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했을까? 물론 그것은 미국 영화 이야기이긴 하다.
농협 부녀회에서는 마을의 독거노인에게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해다 드린다. 거동이 불편한 분에겐 일주일에 두 번 도우미를 보내준다. 많은 이들이 노령 연금을 받는다.
평생 자식도 좋지만 본인행복 챙겨야할 때
국가에서 노인에게 할 만큼 하지만 노인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건 개인적인 문제이고 상대적 빈곤과 비교에서 오는 고독일 것이다. 일흔 중반이 넘은 시골 노인들은 아이들을 네댓 낳다보니 아직도 결혼을 못 시킨 자식들이 있다. 현재도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셈이다. 허리가 굽고 무릎이 닳도록 일을 한다. 오로지 자식, 자식밖에 모른다. 그 흔한 노인대학을 아직 다니지 못하는 분이 대부분이다.
시골엔 일거리가 지천이다. 일당 오륙 만원으로 자기 집 일 사이사이 굽은 허리를 이끌고 용돈벌이를 한다. 그들은 나보다 주머니가 두둑하다. 모두 자손에게 쓸 뿐 자신을 위해선 로션 한 병을 사지 않는다. 그들은 생산만이 미덕이고 소비는 흉이다. 사실 일 중독증 환자들이다. 그들이 있어 농촌이 이만큼 좋아진 것을 어찌 부인하랴만.
그들은 삶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살이를 도저히 따라 잡을 수도 없다. 어렵게 살던 지난 시절에 의식이 머물러 있는 사이 무릎과 허리가 다 망가졌다. 일거리가 널려 있는 농촌에서 젊은이들이 다 빠져 나가버렸으니 어쩔 것인가?
얼결에 노인회장이 된 남편은 노인의날 행사에서 마을 에어로빅 팀에 출전했다. 그 팀이 논산시 일등을 했으므로 11월엔 도 대회에 출전 예정이다. (2019년에 쓰고 2020년에 발표하는 글입니다.)
- 안정혜(수필가, 본지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