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할 일이 없어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한 적이 있었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사는 의미들이 희색 물감으로 발라놓은 것처럼 변색이 되어 세월을 축내고 있었다. 마치 퇴색이 된 카멜레온의 삶처럼 무의미함이 가미된 변화 없는 삶! 꼭 그런 일상들을 연명하며 살았던 흔적 같은 느낌이었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결국 세월을 헛되이 보낸다는 것을 예측 가능하게 하지만 이런 시절을 보내고 나면 어느 순간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하는 아쉬움으로 뒤끝이 정말 좋지 않은 후유증을 겪게도 한다. 매일 그날이 그날 같아도 세월은 쉼 없이 빨리도 간다. 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은 세월도 그 순간을 의미 없이 빨리 지나친다는 뜻일 것이다.
변화 있는 삶이 그래서 좋다. 그런 삶에는 세월도 이리저리 담아내기 힘들어 아주 더디 가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지난 해 가을부터 내가 하고 있던 건축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올 초부터는 아니 앞으로는 웬만하면 힘든 건축 일을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 새 일이 들어오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앞날을 생각해서 자의적으로 거부한 일이다. 이제는 육체적으로 힘을 쓰는 것은 체력에 부담이 들어 서서히 줄이려는 의도도 물론 있다. 나이도 이제는 육십을 몇 해 남겨 놓은 마당에 자제하려는 측면도 없지 않아서다. 오랫동안 심한 노동일을 했다.
이상한 것은 일이 없어 빈둥대면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더 아프기 시작을 한다. 아무 일없이 멀쩡히 쉬다가도 순간적으로 허리에 담이 들어 움직일 수가 없다. 약국에서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함께 복용해야만 불편한 것이 나아지기도 한다. 일 업무에 대한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지 그동안 앓지 않았던 감기나 몸살도 순간적으로 들어온다. 홍역처럼 한참 동안을 끙끙 앓고 나서야 몸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일이 없어 잠시 쉬기라도 하면 없던 병도 생긴다”는 어르신들의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닌 듯싶었다.
이제 나이도 제법 육십을 바라볼 나이가 됐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다가 이제는 하는 일 없이 한가해지다 보니 시간은 왜 이다지 빨리 가는지? 몸은 또 어떻고 가만히 않아 있다가 일어서려고 하면 입에서 신음소리가 절로 나듯 세월은 내 몸 곳곳에 윤활유가 부족한 녹슨 기계처럼 뻑뻑함을 많이 남기고 가버렸다.
이제부터는 삶의 조절과 조화가 필요할 때가 된 것 같다. 나이에 걸 맞는 적합한 일과 적절한 휴식 그리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과 나이에 맡는 운동 그리고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평생교육 같은 것을 배우는 것이다. 계룡시에서도 이곳저곳을 찾아보면 상당히 많은 교육들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10여 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생을 마감하시기 전까지 독서를 생활화하셨고 서예도 웬만큼 잘 쓰셔서 동네에 누가 새롭게 집을 지을 때면 상량식에 쓰이는 글을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한지를 전지 길이에 폭은 20센티 정도만큼 접어서 그 위에 붓으로 휘 갈기시던 아버지의 손놀림을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 동네 분들은 아버지를 “신선같이 사신다”고 말들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별일이 없으시면 매일 새벽에 대전 보문산으로 운동을 하러 다니셨다. 이십여 년을 그곳에 다니시다 보니 소싯적에 알던 친구 분들을 많이 만났다.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건강을 위해 찾아오는 산에서 알음알음 알던 지인들을 느지막이 새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침은 보문산 입구로 올라가는 도로 옆에 늘어 서있는 보리밥집들 중 한곳에서 늘 친구 분들과 외식을 했다. 당신이 좋아하시던 술을 반주로 삼아 친구 분들과 실컷 대화하시다가 오후 서너 시쯤 되면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자주 보고는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불러 준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호(號)가 운봉(雲峯)이다. 구름운(雲)자에 봉우리 봉(峯)자, 호(號)도 꼭 아버지 같은 느낌이 난다. 당신도 그런 삶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듯하다.
그림이나 서예 또는 수공예나 원예 같은 것은 배워두면 평생을 같이 할 수 있는 취미인 동시에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런데 이런 것에 쉽게 손길이 가지 않는다. 결국 돈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 자기가 움직이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돈하고 연관 짖고 싶은 욕구가 아직도 있다. 내가 하루를 움직이면 일당이 얼마이고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셈을 하다 보니 삶의 질이 늘어져서 향상할 수가 없다. 또한 마음의 여유도 없다. 어떡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그래서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더 연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세월은 이런 절실한 마음을 외면하기가 쉽다. 차라리 욕심이라도 세월이 가져가 버리면 정말 좋으련만 어느새 늙어 버린 몸에 추하게 치장된 장식품처럼 욕심이 꼭 그런 모양새다. 이제는 나이에 맞게 버려야 한다. 돈이 아니어도 행복한 여생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평생교육으로 다져야 한다.
송인겸 사회복지법인 두드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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