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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은진면 남산2리] “팔자좋은 사람은 감나무뜸에 가서 찾으라”
기사입력  2020/03/25 [14:38]   놀뫼신문

[다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은진면 남산2리 

“팔자좋은 사람은 감나무뜸에 가서 찾으라” 

 

 

 

은진면 남산리는 1~3리이다. 은진면사무소에서 득안대로로 나오면 은진사거리인데, 거기서 직진하면 채운면사무소로 가는 탑정로이다. 그 탑정로 중간쯤이 남산2~3리이다. 

남산1리는 놀뫼장례식장쪽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남산리 전체 퍼즐이 맞추어진다. 그러나 티맵에서 #남산2리마을회관 검색하면 양촌면 남산리나 탄천면 남산리로 뜬다. 아직도 남산리는 오지 같다. 

남산리가 눈에 띄는 것은 남산재 덕이다. 남산재는 3·1운동 당시 동학도로서 논산의 항일운동을 주도한 손필규(孫弼奎) 접주의 묘가 있는 산의 정상이다. 남산재는 돈 없는 서민들이 찾아오는 최후의 안식처, 공동묘지이다. 남산2리는 그 남산재를 경계선으로 하여서 3리와 구분된다. 3리는 손씨 집성촌으로 본다면 2리는 주씨 집성촌이다. 

 

성재 너머 양송이공장의 전설

 

2리 한복판에서 교촌리쪽을 보면 야트막한 산이 마주하는데 ‘성재’라고 부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초봄, 새파란 보리밭산이다. 그 보리가 소 먹이로 길러지는 줄 알았더니, 아니란다. 보리가 크면 그것을 그대로 갈아엎고 인삼밭으로 만든다는데, 보리고개 넘겨주던 보리가 이제는 먹거리 아닌 한낱 거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 보리 고개 너머로 양송이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오륙십년 전 교촌리쪽으로는 더 큰 양송이공장이 있었다. 둘이면서 하나인 이 농장은 사람들을 많이 썼고, 빡세게 일을 시키지 않아 인근 청춘 남녀들에게 큰 인기였다. 진짜 인기는 딴 데 있었다. 선남선녀들 일자리 창출은 연애 창출로 이어졌고, 그리하여 결혼에 골인한 커플도 꽤 된다는, 이제는 ‘저 산 너머’ 전설처럼 아득하다. 

그 성재는 원래 앞동산이었는데, 화전을 하여 밭이 된 경우이다. 개간하느라 땅을 파보니 관이 많이 나왔는데, 사람들은 그 관에 고여 있던 시체물을 경쟁적으로 떠왔다. 당시 또다른 만병통치약은 똥물이었다, 허리가 아프다 해도 그 물을 마시고.... 

고릿적 얘기 접어두고 다시 남산2리 마을회관 앞에 서면 ‘거름실’이라는 이름이 병기되어 있다. 남산 동북쪽 골짜기에 있던 이 동네는 거음리(巨音里)로도 불렸는데, 그 전 이름은 두염리였던 거 같다고 오구영 노인회장이 발음한다. <두엄 → 거름>으로 추측해 보지만 어디까지나 추측. 이런 추측이 가능하기도 한 게, 이 동네에 돼지막이 하나 있어서다. 동네 반대쪽 변두리에는 개막도 하나 있다. 시골에 흔히 있을 수 있는 풍경이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은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돼지농장에서 제일 가까운 인가가 다름 아닌 서울에서 내려온 집이다. 식당을 하다가 귀촌한 경우인데, 농가 계약 당시 마주 보고 있던 돼지집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한다. 성격이 깔끔해서인지 그 집 안마당은 물론 바깥 농로까지 싹싹 쓸어서 집 안팎이 훤하다. 

이 동네를 환하게 빛내 주는 것은 벽화이다. 남산1리에서 2리쪽으로 넘어오는 샛길은 생명력 넘치는 벽화로 이어진다. 교촌리쪽 의신감리교회에서 그려놓은 모양이다. 남산2리로 건너와 동네 안쪽, 그러니까 동네 한복판인 구길을 따라서도 벽화 라인이다. 옆 동네 남산3리는 벽화에 목화가 등장하고, 게다가 실제 목화도 많이 심어 목화마을이 됐다. 해바라기축제가 열리는 채운면 야화리도 지척지간이다. 채운면은 꽃 화(花)자 안 들어가는 데가 거의 없는데, 남산리도 질세라이다. 

 

 

 

감나무와 소나무, 사람나무 

 

남산2리 한복판 벽화는 ‘감나무뜸’을 대문자로 하면서 으뜸으로 삼아놓았다. 감나무뜸은 남산리 자연부락 마을 이름 중 하나다. 옛날에 권력있는 사람이 감나무로 울타리를 하고 태평성대를 누린 마을이라 해서 “팔자 좋은 사람은 감나무뜸에 가서 찾으라”는 말과 함께 온 나라에 알려졌던 마을이다. 최근에도 조 참판이 크게 세도를 부리며 살아왔다고 전해오는 떵떵거리던 동네이다. 

감나무뿐 아니다. 남산리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소나무 군락지가 많다. 득안대로를 빗겨나서 방축1리에서부터 남산1리까지 동네길로 접어들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이다. 시내 가까운 이런 곳에 듬직 소나무들이 울울창창이라니......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빛” 남산2리 벽화에 써 있는 일필휘지이다. 남산리도 방축리처럼 동네 한가운데에 우물이 없을 리 없다. 지금은 봉인되어 버린 우물. 동네잔치로 풍악을 울리면서 행하던 칠석날 행사에 우물물퍼내기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동네일도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사라진 게 꽤 많다. 표고버섯 재배농가가 몇 집 됐는데, 지금은 한 농가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표고버섯으로 돈을 벌어주었던 하우스들은 이제 앙상한 뼈만 드러내고 있다. 돼지농장 옆 곤충농장도 오래 전부터 낡은 간판이 주인장처럼 우두커니다. 탑정로 도로변에 있는 “유성장의사” 큰 간판은 서낭당 쪽으로 접어 들어가면 나오는 외딴 집에도 걸려 있다. 그러나 그 간판은 문패처럼 자그마하다. 예전에는 성했던 장의사가 이제는 놀뫼장례식장에서 머잖은, 불가근불가원 거리에서 샛길을 지키는 은둔자의 처소 같다. 그 샛길 초입인 서낭당 주변에서는 비오면 사람뼈도 나왔다는데, 그 좁은 차로 지나는 어느 누가 그런 낌새라도 눈치 채려나?.....

이 동네 오래된 간판 중에 “한일모터”가 눈에 뜨인다. 허름해 보이지만 한일모터 창고는 동네 이곳저곳이다. 연무대쪽에서  전기사업으로 대성한 기업 신흥전설이 있다. 거기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던 송갑준 대표가 잘 나가는 기업의 성공 노하우를 익혔는지, 한일모터 대리점을 인수받아서 돈을 번 경우이다(송대표는 현재 동네 대동계 총무). 30여 가구, 60여 명이 모여 사는 남산2리는 특출난 농산물도, 크게 출세한 사람도 많지는 않다. 쌀농사가 주 산업이고 박윤생 씨(60세)처럼 몇 가구가 딸기농사를 짓는다. 전형적인 농촌인데, 현재 농업기술센터 장익희 소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기자가 마을회관을 찾아갔을 때 안에는 세 명의 어르신이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 이간질하는 코로나 세상이지만, 언제까지나 방콕으로만은 살 수 없었던지 회관으로 마실 온 할머니 3총사이다. 그 중 하나가 장소장의 어머니였다. 

 

 

 

 

100세 할머니와 500개 마을 이통장

 

남산2리 경로당은 올해 큰 경사가 하나 있다. 한일모터 송갑준 대표의  어머니 백선녀 여사가 올해로 100세 생신을 맞기 때문이다. 6남매를 둔 백 여사는 여전히 마늘농사 깨농사로 분주한 일상이다. 평범 속의 비범, 건강의 최고 비결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연산에서는 100세 기념 현수막이 나부꼈는데 남산리에도 현수막이 곧 내걸릴 거 같다. 현재는 마을회관 앞에 이 동네 신석순 이장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신석순 님, 논산시 이통장협의회장 당선을 축하합니다”

논산시 500여개리 이통장의 대표로 뽑혔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자 대단한 동네 경사이다. 이제 모범이 돼야 할 남산리는, 그래서 더 분발해야 하는 시발점이다. 2018년 11월 남산2리 마을자치회는 지역문화탐방을 실시하였다. 2019년은 은진면 남산2리 경관개선사업이었다. 주택담장 그래픽 개선과 마을회관 및 공동시설 경관개선이 실행되었다. 올해 사업으로 우체통(문패)만들어 달기를 할 예정이다. 

마을일 중에서 궂은 일은 이장보다 지도자가 도맡아서 할 때가 많다. 이 마을에서 지도자를 오래 한 김범태 씨(64세)는 마을의 궂은 일도 마다않은 채 오래 했다. 벼농사 지으면서 한때는 한일모터 일도 했다. 현재 마을지도자는 한한수 씨로 바뀌었다. 20년 전 인천에서 이사온 귀농인으로 처가인 용산리 대신 남산리에 들어와 정착한 케이스다. 한때 버섯농사를 지었으나 현재는 쌀전업농이다. 강득규 씨는 나이 70에도 쌀농사와 딸기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주민이다. 

표고버섯을 많이 하다가 줄이고 벼농사만 주력하는 젊은 농군으로 5학년 이종범 씨가 있다. 형이 짓던 농토까지 물려받았지만 인력 부족으로 하우스를 묵혀두는 실정인데, 현재 논산농업경영인회 사무국장일을 보고 있다. 김복순 부녀회장은 억순이다. 남편과 함께 300마지기 벼농사를 짓는데, 농한기 때에는 종묘장 같은 데로도 일 다닌다.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네 부녀회장직을 수행중인, 이름처럼 복순이다^ㅎ^ 

예전 이장들도 동네를 이끌어온 역군들이다. 최건성 전이장(71세)은 아직도 딸기, 상추 하우스를 한다. 남승우 전이장(62세)은 벼농사를 지으며 건축일도 나간다. 잠깐 이장을 봤던 엄승호 씨(63세)도 건설일을 한다. 농사일 말고 다른 일 하는 경우인데, 정전희 씨(67세)는 건양대 경비실에서 20여년간 근무중 이상무! 역대 노인회장도 남산2리를 일궈온 동네의 큰 어르신들이다. 이광재 전 노인회장(90세)은 하우스 농사를 지으시다 현재는 백제병원에 입원중. 장익희 소장의 아버지인 장한식 옹(84세)도 노인회장으로 동네일을 돌보셨는데, 현재는 오구영 회장이 바통을 물려받아서 뒤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한글교실이 문을 못 열고 있지만 여기 경로당에서는 7~8명이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100세행복과에서 신경 써주는 일은 다 누리는데, 옆동네 남산3리처럼 적극적이지는 않고, 물처럼 조용조용이다. 

남산2리는 자그마한 동네이다. 청년회도 없고, 마을자치회도 정착 단계라 보기에는 초창기다. 대신, 동네일은 대부분 대동계에서 이루어진다. 효도관광, 야유회, 칠석날행사, 어버이날행사 등을 상의하고 이장 선출도 여기서 한다. 이장 임기가 짧아서 생길 수 있는 문제는 마을규칙을 개정함으로써 해결하였다. 사실 옆 동네인 교촌2~3리 이장의 경우는 20년 이상 이장을 했다고 하니, 이장 임기 개정도 필요했던 형국이다. 대동계 수장인 장경식 대동계장(72세) 부부는 쌀 외에 표고버섯이나 제철 채소류도 농사지어 아파트장터에 제값 받고 내는 강소농이다. 

 

 

 

 

 

은진면 이장단협의회

 

신석순 이장은 감투가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은진면이장단협의회장이다. 이제 시야를 은진으로 넓혀보자. 우선 남산리. 자연부락으로는 감나무뜸, 거름실, 남산, 눈다리, 삼거리, 속말, 앞실 등이 있다. 남산1리에는 조경농장으로 보라농원이 1~3농장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교촌리에 있는 은진향교에서 젊은 나이에 전교를 지내고 이제는 논산시 유림협의회장으로 있는 이찬주 씨 집도 남산1리이다. 아직도 재래식 부엌에 예전 생활방식을 오롯 유지하고 있는 생활사박물관이다. 남산3리는 남산교회 바로 밑에서 논산딸기의 원조 손창식 옹(85세)이 살고 있다. 바로 옆동네인 용곳(용화리)에는 논산딸기를 전국으로 전파한 박상규 논산딸기전도사가 살고 있다. 

전설을 만들어가는 은진(恩津)이 알게 모르게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향교가 있는 교촌1리는 젊은 이장(김창중)이 이끌어간다. 면사무소가 있는 연서리 관아골은 신명나는 마을학교로서 농촌 아이들을 뺏기기는커녕 논산시내 내동에 있는 아이들도 불러모으고 있다. 방축리는 작년에 은진복숭아축제를 시청이나 주변 동네의 도움 없이 치뤘다. 은진면의 큰 행사는 은진면한마음축제이다. 그런데 10년 전에는 8·15광복절기념 은진면 리대항축구대회가 매년 열렸다. 뜨거운 한여름 폭염을 축구로 녹여버리는 은진 최대의 행사였다. 33세때부터 은진축우회를 맡았던 신석순 씨는 당시 대회장으로서 뛰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은진에서 축구국가대표로 김기선과 염기훈 선수가 배출되었는데, 아마도 그 체육대회가 영향을 주었을 거 같아요ㅎ~” 인구 감소로 이 대회는 맥을 잊지 못하고 이제는 격년으로 서늘한 때에 한마음대회로 열린다. 은진면체육회장이 주관하지만 이장단회장이 추진위원장이 되어서(2014년에는 남태우 이장), 모두가  한마음으로 열어왔다.

은진면협의회 총무는 토건사업가인 윤여한 성평3리장이 맡고 있다. 이제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장원섭 은진면장의 면정1호는 ‘깨끗한 은진’이다. 이를 위해 마을대청소는 물론 꽃길조성 등으로 은진의 이미지를 한껏 쇄신해 놓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은진면 이장단을 이끌어갈 선봉장에 신석순 남산2리장이 당선된 것이다. 

이 기세는 파죽지세로 이어졌다. 논산시이통장협의회 선거에서는 은진면을 대표하여 나간 신 이장이 선전하여 논산시 대표 이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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