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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쌘뽈Saint Paul과 관촉사灌燭寺
기사입력  2020/03/25 [15:48]   놀뫼신문

 

논산에는 특이한 이름이 많다. 자주 보아서 익숙해져 있지만 타지 사람들 눈과 귀에는 튀는 이름들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의미로운 이름도 많다. 논산에서 그러한 이름들을 찾아나서본다. 어느 지역에서든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간판이요 명칭인데, 그게 첫 인상을 깊게 드리우기 때문이다. 

논산의 제1경은 은진 관촉사이다. 도로 안내판에 크게 써 있는 관촉사는 우리 눈귀에 익어서 그냥 관촉사이다. 그런데 왜 관촉사일까? 한자로 쓰면 灌燭寺이다. 여기서 관灌은 물댈 관으로 ‘따르다, 붓다’는 뜻도 있다. 촉은 촛불 燭이다. 

관은 어려운 한자 같지만 일상에서도 곧잘 쓰이는 한자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용수도 灌漑用水라고 쓴다. 변비로 고생할 때 쓰는 관장약도 灌腸藥이다. 이제 머잖아 사월초파일인데 관불회灌佛會가 열린다. 불상에 향수 같은 것을 끼얹어 뿌리는 의식(儀式)이다. 요약하면 물 삼수변(氵=水, 氺)이 붙은 灌은 물을 대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관촉은 ‘촛물을 붓거나 촛불을 밝힌다’는 의미이다. 

서기 968년 창건 당시 ‘은진미륵’ 설화가 재미있다.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 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3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드디어 불상이 세워지자 서기(瑞氣)가 한달 여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豪)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성경의 동방박사처럼, 중국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불하였다. “마치 촛불을 보는 것 같이 미륵(彌勒)이 빛난다”고 하여 이 절 이름을 관촉사로 지었다 한다. 

평범해 보이는 이름도 유래를 알고 나면 다시 보게 된다. 논산의 대건고등학교는 그 앞에 꼭 논산을 붙인다.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딴 대건고가 인천과 대구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볼 때부터 튀는 이름이 있다. 같은 카톨릭 미션스쿨인 쌘뽈여중고가 그러하다. 이름이 너무 쎄다보니 이 이름 한번만 들으면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잠깐, 쌘뽈은 처음부터 쌘뽈이 아니었다. 

1961년 12월 30일 해성여자고등학교 6학급 설립 인가를 받고 다음해 3월 10일 개교 및 입학식을 한 다음 곧바로 22일에 쌘뽈여자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한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982년 봄 중·고를 분리하고 작년봄에는 쌘뽈-대건 학교연계 공동교육과정을 시작한다. 쌘뽈은 Saint Paul의 불어 표기이다. 영어로는 세인트 폴인데, 프랑스어를 정확히 발음하면 쌩뽈이다. 브라질의 대도시 상파울루(São Paulo)는 포르투갈어로 ‘사도 바오로’이다. 개신교에서는 보통 ‘성(聖) 바울’로 부른다. 발음은 어쨌거나 이분은 대체 누구인가? 얼마나 위대한 분이기에 대도시 이름에도, 학교 이름에도 붙은 것일까? 

사도 바울의 위대성은 그의 저술활동에서 두드러진다. 두툼한 성경책은 대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분한다. 그 신약성서의 절반을 써서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성경 저자 중의 하나이다. 그가 써내려간 내용은 하도 묵직하여서 그의 서신(편지)에서 상당한 권위를 느꼈던 사람들이, 막상 대면하게 되면 실망하였던 모양이다. 체구가 작은 사도 바울 자신이 직접 그렇게 써놓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용맹무쌍한 글에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이, 그의 용모를 보고서 실망의 눈빛을 보였던 경우와 엇비슷하다고 하겠다. 

글과 풍채는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위대성은 글=말=행동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에서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灌祭)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빌2:17)”고 썼다. ‘관제’라고 하는 제사는, 모든 제사(예배)의 마지막 순서를 말한다. 맨 마지막에 양을 끌어다가 목을 친다. 그러면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데, 그 피를 받아서 제단에 뿌린다. 이것이 바로 ‘관제(灌祭)’이다. 

지금 바울은 이렇게 글로만 쓴 게 아니라, 실제 그 소망 그대로 따랐다. 로마 <세 분수 성당> 정문에 바울의 순교 장면을 상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목을 치는 순간 바울의 목은 세 번 튕겨져 나갔고, 그때마다 거기서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이 사실을 기념하고자 그 자리에 성당을 지었고 성당 이름은 ‘세 분수 성당’으로 지었다는 해설이다.  

그 관제와 관촉사의 관灌자가 일치한다. 상호 연관성은 없지만, 한자로는 동일하기에 한자 공부 차원에서 접근해 보았다. 논산의 이름들은 파고 들면 들수록 노다지 광맥 같다. 교육현장만 일별해 보더라도 왜 건양(建陽)이라 지었으며 명곡관? 강경중학교 낭청축제? 논산에서 시작하는 네이밍 여행, 일상의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줄 거 같은 설렘이다.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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