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이 오는 길목은 늘 그러하듯, 우왕좌왕 어지러이 바람이 불었다가 꽃이 피었다. 그 연약한 꽃잎 위로 하얀 눈이 무거운 군화발을 철퍼덕 내질러 여린 꽃송이들을 짓밟아 누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했던 내게, 흑백사진처럼 무채색밖에 보이지 않던 도시의 첫봄은 퍽 생소하고 낯선 만큼 외롭기도 했다. 먹어도 먹어도 왜 그렇게 배는 고프던지.... 봄바람이라는데 훈풍은커녕 옷섶을 파고드는 차가운 기운이 말 그대로 뼛속까지 시려워서, 늘상 어깨를 움츠리고 종종 걸음을 걸었다.
도시의 길들은 모두 높은 빌딩 그늘에 가리어 더욱 우중충하고 하늘은 어찌 그리 허구헌 날 구름이 끼인 듯 음산한 회색빛이던지? 그야말로 은밀한 안개가 발목까지 슬금슬금 밀려들어와 발 아래의 냄새나는 시궁창과 오물들을 언제 밟을지 모르고 마음 졸이며 위태하게 걷는 느낌이었다.
결국 서울생활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논산에 가까워올수록 버스를 타고 내려오며 창밖으로 펼쳐지던 경이로움이라니... 마치 흑백TV를 시청하다 처음으로 컬러TV를 보고 받았던 짜릿함과 환희라고나 할까~~ 햇살은 엄마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따스했고 지천에 깔린 초록 잎사귀들은 지칠 줄 모르게 녹음을 뿜어냈다. 내 안의 핏돌기들은 뜨겁게 뎁혀지며 발끝 손끝의 말초신경까지 맹렬하게 뻗어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장대한 산줄기와 벼이삭 풍성한 들판을 굽이굽이 머무르며, 흐르며 내 폐 안으로 들어오던 맑고 싱그럽던 고향의 냄새에 희열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고향은 내 삶의 원천이자 에너지였던 거다.
그 뒤로 다시는 대처를 생각도 안 했다. 반평생을 논산에 터전 잡고, 대처에 나가 사는 친구들에게 자칭 타칭 “시골 촌아지매”로 불리며 살아오고 있다. 여전히 나는 고향 논산을 좋아하고 , 시골 논산을 사랑한다.
가끔 서울이나 대도시에 볼일이 있어 차를 끌고 나가보면 길이 막혀 미치고 팔짝 뛰게 답답하여, 신호위반 불법이라도 저지르고 싶은 충동도 슬그머니 느껴진다. 회색도시의 몰개성한 무채색이 슬그머니 나를 물들여 버릴까 싶어서, 볼일만 보고 냉큼 내려오기 바쁘다.
논산에서 나는 바람 부는 날이면 깊고 드넓은 탑정호수를 찾아간다. 일렁이는 물결을 세어가며 셀 수 없이 일어나고 또 소멸함에 무한 속의 찰나를 체득해 한줌 먼지들을 툴툴 털어버리기도 한다. 어느 날은 노성산에 오른다. 팽팽한 신경의 날카로움에 베일까 염려하며 한발한발 힘주어 내딛는 육체의 고단함으로 다독여 심기일전하고 온다. 홍시감 같은 달콤한 햇살이 물결치는 가을날이면 매일매일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너른 들판을 거닐며, 땅에 닿도록 고개 숙인 낱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더 낮추는 겸손을 되새기기도 한다.
이렇듯 고향 논산은 서정적인 내 감수성을 지켜주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모퉁이를 휘몰아쳐 내달리다 마주치는 바람엔 내 아버지의, 지인의, 아들의 아들 소식이 실려 온다. 행길가 파란 기와집 거미줄 친 추녀 끝엔 내 어머니의, 동생의, 친구의, 딸들의 안부가 묻어 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이 모두 낯익은 지인이요 동창과 친구들이니, 고향은 나의 정서를 뒷받침하고 나를 다잡아주는 버팀목이다.
어린왕자와 여우, 장미처럼 서로에게 길들여짐으로써 책임감과 사랑이 생겨나는 곳이다. 내가 만들어가는 내 삶의 원천이자 터전인 논산이기에 내가 어찌 내 고향 논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즘 귀농 귀촌이 유행이 되다시피하여 도시에서 피폐해진 영혼들이 힐링을 겸하여 시골로 많이들 내려오고 있다. 일찍이 고향을 되찾아 내려왔던 나의 영혼은 나날이 연륜을 더해가며 살찌워지고 깊이를 더해가는 듯싶다. 놀뫼의 은혜를 입어서 그런 듯하여 내 고향에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도 반야산 은진미륵의 미소를 닮아가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