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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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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뫼단상] 보이는 말, 만져지는 말
정경일(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기사입력  2019/06/19 [17:35]   놀뫼신문
▲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놀뫼신문

 

사람을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일까? 너무 식상한 질문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손을 사용한다는 점도 있고 이와 관련하여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또 축제나 유희를 즐긴다는 점을 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러 특징 가운데 말을 사용한다는 점을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말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를 할 수도 있고 서로 쉽게 소통하면서 사회생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말을 쓴다고 할 때 가장 기본은 입을 열어 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것을 글씨로 쓰는 두 가지입니다. 이를 학자들은 음성언어, 문자언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이런 것 외에 좀 더 다른 말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수어이고 또 하나는 점자입니다. 

 

눈으로 손으로 통하는 말 

 

먼저 수어라는 말이 좀 낯설지 않으신가요? 얼마 전까지 수화라고 했었는데, 수화는 단순한 사인이라는 의미가 강했는데 반해 수어는 농인들, 즉 청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라고 하는 의미에서 수어(手語, Sign language)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표현과 동일하게 하나의 언어라는 의미로, 격상된 이름입니다. 따라서 수어에는 한국어와는 달리 고유의 어휘와 문법체계가 있기 때문에 농인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이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수어는 일반적으로 손을 주로 사용하여 소통을 합니다. 그래서 수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그저 손짓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손을 주로 사용하고 여기에 표정을 보태어 정확하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합니다. 손을 사용하는 것도 일정한 원칙이 있어서 손과 손가락의 모양(수형), 손바닥의 방향(수향), 손의 위치(수위), 손의 움직임(수동) 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또한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어는 나라별로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한국 수어를 사용하는 한국 농인과 미국 수어를 사용하는 미국 농인은 서로의 수어를 배우지 않고는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우리가 영어나 중국어를 따로 배워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소통의 또 다른 방식 하나는 손으로 만져보고 알아보게 되는 점자입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청각에는 이상이 없기 때문에 말로는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말로 하는 소통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크게 받기 때문에 기억과 전달의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문자가 탄생한 배경도 결국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함인데, 점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문자입니다. 

수어에 비해 점자는 우리의 일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건물의 엘리베이터나 출입문, 계단 등에 점자로 안내문이 표시되어 있고, 도로에도 점자는 아니지만 시각 장애인들이 알아볼 수 있는 기호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장애우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분들은 자신의 명함에 점자로 이름을 새겨 다니기도 합니다. 

점자는 세로 세 개, 가로 두 개, 모두 여섯 개의 점을 조합하여 하나의 글자를 만듭니다. 이러한 방식을 6점형 점자라고 하는데 점의 숫자만 보면 세계적으로 동일합니다. 물론 각각의 글자를 나타내는 모양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6개의 점을 조합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글자의 수는 모두 63개가 됩니다. 예전에 ‘훈맹정음’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우리 점자는 시각 장애인들과 우리들이 소통하기 위한 일차적인 접점이 됩니다. 

 

모두가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하여 

 

수어와 점자는 특별한 소통방식이지만 이제는 특별한 자리에만 두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라는 말은 누구나 쓰는 말이지만, 진정으로 이 세상의 모두와 소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농인이 아닌, 건강하게 듣고 말하는 사람을 청인이라고 하는데, 농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청인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인지능력이나 정보처리에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다만 방식이 다르다는 점만을 이해하고 수용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서로가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수어나 점자가 아니면 소통이 쉽지 않은 분들이 그들끼리만 만나고 얘기하고 살아가지 않고 우리 모두와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요? 시각이나 청각에 장애가 있는 분들을 위하여 우리가 좀 더 이러한 소통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배우고 사용하고자 노력할 때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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