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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봉칼럼] 인간의 본성
문희봉 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기사입력  2018/07/28 [20:27]   놀뫼신문
▲ 문희봉 시인, 전 대전문인협회장     ©놀뫼신문

 

장마철이나 궂은 날 엄마 곁을 떠났다가 제 집 찾지 못하고 땡볕에 아스팔트 바닥을 뒹구는 지렁이를 본다.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思考)를 보면 천차만별이라는 걸 느낀다. 본 체 만 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발로 짓이겨 으깨는 사람도 있다. 여자들은 징그럽다고 피해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번쩍 들어 풀숲에 던져 준다. 이런 행동이 인간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잔인해지는 법을 익혀 왔는가? 우리 인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악랄해졌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인간이기를 포기했는지 모르겠다. 얼마만큼 잔인해야 성이 찰 것인가?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날이 새고 나면 듣게 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이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나를 비롯한 모두의 안면을 찌푸리게 한다. 얼마 전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의 사망 사건(거기엔 그 딸의 아빠 친구가 개입되었을 개연성이 크나 이미 자살한 상태라 미궁에 빠질 염려가 있다.)을 접하며 인간의 타락의 끝은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화분이나 밭에 씨앗을 파종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생명의 신비를 경험한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아기부처요 아기예수의 사랑과 보시의 정신을 체득하게 된다.

  

무릉도원 같은 인간 세상에서 낭랑한 새소리를 진저리나도록 듣고, 간질이는 물소리 맘껏 감상하며 아름다운 정서를 키운다. 그런데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선량한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될 것들이 더러 나타나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그럴 땐 아이들 보기가 민망하다.

 

돼지들은 먹을 것이 무진장한 구유 앞에서도 머리를 맞대고 싸운다.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서다. 인간도 마찬가진가 보다. 조그만 이권 앞에서도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을 금방 갈라질 듯이 사생결단하려는 듯 싸우는 부부의 모습도 심심찮게 본다. 잔인할 정도의 동물 학대, 동물 도살, 이런 장면들을 자주 접하며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가슴속에선 무엇이 자랄 것인가. 사랑이, 친절이, 배려가 자랄 것인가? 증오가, 미움이, 파괴 정신이 움틀 것인가?

  

운동경기는 승패를 떠나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사회성을 키워내는 과정이다. 정정당당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건강을 도모하고 모둠살이의 원리를 익혀가도록 도와준다.

  

반드시 이겨야 된다는 경직된 사고가 화를 부른다. 비열한 방법으로 원칙을 훼손한 후에 쟁취하게 되는 승리의 월계관에 입을 맞춘들 그게 무슨 가치 있는 일인가?

 

짐승들을 도살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가슴이 전율한다. 그런 느낌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다. 어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더 가볍게 생각하는가. 한 번 저질러 본 살인 행각이 더 큰 화로 발전한다.

  

얼마 전 선량한 여대생을 차에 태워 욕망을 달성하고는 세상과 완전 격리시킨 일도 있었다. 흔적을 없애기 위해 손톱까지 잘라냈단다. 몸서리치는 일이다. 살려 달라 애원하는 여리디여린 여대생의 목을 어찌 그리 졸랐단 말인가.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인 인면수심의 살인범,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자기는 부모 자식도 없는가. 형제자매도 없는가. 묻고 싶다. 식인종이 보았다면 먹지도 않을 걸 왜 죽여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낮이면 일상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했다니 기가 찰 일이다. 그런 보도를 접한 날이면 나는 불면에 시달린다. 뜻하지 않게 자식 잃고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 쏟아내는 부모에게 우린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하는가.

 

타인에게 사기를 쳐서 배불리는 것이 그리 좋은가.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선량한 사람들의 가슴에 왜 예리한 송곳을 찔러대는가.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7월의 햇살 아래 맑고 아름답게 빛나는 나무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산에 올라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무 아래서 초록물이 든 가슴으로 가족, 이웃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본다.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이다.

 

누구나 행복을 누리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닭이 낳은 신선한 달걀을 먹고 싶어 한다. 너른 초원에서 맘껏 풀을 뜯으며 자란 암소에게서 생산된 유기 우유를 마시고 싶어 한다.

 

화가 몹시 났을 때는 얼른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것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좋은 방법이라 하던가. 화는 아기와도 같아서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주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화는 너무 오래 품고 있으면 건강에 해롭다. 빨리 제거해야 한다. 화를 연민의 에너지로 바꾸어 새 사람이 되게 함은 쓰레기가 비료가 되어 다시 꽃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곧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우매한 인간은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모든 감정의 씨앗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묻혀 있다. 기쁨이나 연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의식 속에 나타나면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시기나 화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에게 불행감을 안겨준다.

 

비가 내릴 때 우리는 햇빛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면 거기 햇빛이 있음을 알게 된다. 햇빛이 늘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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