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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교(異敎)연구와 비교종교(比較宗敎)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박영관 교수의 ‘이교종파’에 대한 저서를 인용해 이교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입장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 포교활동을 하다가 서기 13세기초 힌두교의 압박과 이슬람교의 침략으로 인도 본토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하여 고려시대에 최고의 절정을 이룩했다. 당시 불교는 정치와 밀착해 우상주의로 전락되어 갔다. 결국 불교는 고려의 멸망으로 그 세력이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주자학(朱子學)이 1296년에 들어왔기 때문이며 이 새로운 학문이 신앙적 유교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족 신앙인 샤머니즘과 혼합하여 미신적 불교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다시 유교와 혼합하여 형식주의로 전락되고 이로 기인해 산중에서 수도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불교는 기독교에는 형상주의적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불교를 철학적 집단 혹은 형이상학적인 학문으로 이긴다. 최근에 와서는 불교도 하나의 신앙적 집단 혹은 종교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석가모니의 근본적인 원리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는 브라만교의 개혁으로 시작하여 인도의 힌두교와 아라비아의 이슬람교에 정착되고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고 이웃나라로 포교되어 갔다. 그 중에 일부가 중국에 들어가 중국불교를 이룩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한국불교를 이룩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일본 불교가 된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해 유럽으로 진출한 불교는 미국불교와 유럽불교를 낳게 된 것이다. 오늘에는 세속불교화가 되어서 산중에서 도시로 나와서 세속과 동화되어 가고 있다. ㉮ 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석가모니 힌두교는 범신론으로서 일반백성들은 많은 신들, 또는 베다의 신들에게 공을 바치는 의식과 제사를 지냄으로써 가산을 탕진하게 되었다. 또 힌두교의 카스트, 즉 계급사회는 날로 심오해 가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은 가면 갈수록 도탄에 빠지게 되고 도덕과 윤리는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었다. 여기에 개혁을 부르짖고 나선 새로운 사상적 집단이 형성되게 됐다. 그것을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한다. 그들은 베다신화의 전통을 무시, 자유로운 상상을 전개하고 제사의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관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브라만을 최고로 여기는 사회조건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평등의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이 개혁 운동의 하나가 불교탄생의 근원이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불교는 한갓 브라만교 혹은 힌두교의 개혁으로 파생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불교는 힌두교의 분파로서 독자적인 신앙과 규범을 형성한 것이 아니고 개혁한 힌두교의 원리와 양식을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는 점차적으로 후대에 이르러서는 지역과 민족 그리고 국가의 사상과 혼합하여 혼합주의 사상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밝히는 것은 인도의 불교는 전통적인 힌두교 혹은 브라만교를 개혁하여 파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운동을 전개한 사람이 석가모니라는 것이다. ㉯ 불교의 역사적 배경 인도의 불교는 여기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 또 인도의 불교는 브라만교의 카스트(Caste)혹은 사성(四姓)의 계급제도를 타파하는데 기인되고 있다. 인도의 카스트는 서로 다른 계급들 사이의 상호통훈(相互通婚), 공동식사(共同食事), 직업의 변경을 금지하는 것을 포함하는 엄격한 제재를 가지고 있으며, 소위 불가접촉(不可接觸)의 행습은 인도의 사회적 기구에 가장 혹독한 것이다. 이 악습을 개혁하고 나온 것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불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브라만 사상과 반 브라만 사상을 지향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저작권자 ⓒ 놀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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